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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이야기] 대추리 이장을 생각한다

수번 201번, 김지태 이장이 있어야 할 곳

6월 20일, 김지태 대추리 이장과 강상원 평택대책위 집행위원장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법원은 결국 구속을 확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모두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는 투쟁 과정에서 한 사람은 주민대책위 위원장으로, 한 사람은 평택지역대책위 집행위원장으로 활동, 수배되었다가 자진 출두하여 조사를 받았다.


배짱 한번 두둑했던 그 사람

지난 16일 상경한 평택 주민들이 청와대 앞에서 김지태 이장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 지난 16일 상경한 평택 주민들이 청와대 앞에서 김지태 이장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김지태 이장은 이번 평택 미군기지 투쟁 때 처음 만난 사람이다. 그는 늘 여유가 있었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확신을 그는 아주 쉽게 토로한다. “이 투쟁은 이기게 되어 있다.” 왜냐고 물으면 자신이 모든 정보를 분석한 결과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 그 정보는 어디서 얻었냐고 하면, 이상한 소리를 한다.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대재앙을 하찮은 미물들이 먼저 알고 대피한다나? ‘동물적 감각’으로 돌려버리는 거다. 말이나 되나 싶은데, 그 사람은 매사 이런 식이다. 지난 5월 4일 국방부가 경찰과 용역을 앞세워 대추리와 도두리, 황새울 일대를 점령하고 대추분교마저 파괴했을 때 그는 대통령에게 “당신은 철저하게 패배했다.”고 선언했다. 패배한 것은 주민들과 평택범대위인데도, 그는 오히려 노무현이 이 투쟁에서 졌다고 선언한다. 정부에서 대화를 하자고 나오라고 하면, 국방부장관쯤은 돼야 주민 대표를 만날 수 있다고 큰 소리 친다. 나보다 클 것도 없는 작은 체구의 비슷한 연배의 그는 배짱 한번 두둑하다.

이렇게 대체로 진지할 것 같은 이 사람이 흰 소리도 자주 하고는 한다. 난 그와 회의 때 외는 진지한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수배 중에 대추리 이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아니 더 솔직히 이장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내게 넘기라고 한 적이 있다. 분명 농담으로 건넨 말이었는데, 그는 “주민 총회를 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받는다. 그럼, 권한대행이라도? 그것도 주민총회를 해야 한다고 이때만큼은 정말 완고하게 버텼다. 오고간 대화의 모든 내용을 다 적을 필요는 없지만, 어느 땐가 진지하게 기자가 왜 이런 투쟁을 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주민들이 하라고 하니까 한다.”고 답해서 기자를 당황하게 한 적이 있다. 자신의 생각이 있고, 자신의 뜻대로 주민들을 이끌 수도 있는데, 그는 철저하게 주민의 핑계를 댔다. 그리고는 그는 전략적 유연성에서부터 지금까지 미군기지 이전협정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쫙~ 풀어냈다. 왜 농민들은 반미를 주장하면 안 되냐, 왜 주민들이 외부세력에 이용당하는 멍청한 사람들이냐면서 자신들이 오히려 외부세력을 이용하는 거라고도 말했다.

주민들에 대한 그의 철저한 신뢰,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인 이장에 대한 주민들의 절대적인 신임! 이런 것이 있어서 오늘까지 4년 동안 대추리, 도두리가 정부의 국가폭력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는 그럴싸한 어려운 이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생활 속에서 철저하게 몸에 배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었다. 그는 주민들에게 그들의 말로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동의를 구한다. 나는 당신들의 결정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그런 믿음으로 그는 배짱 있게 정부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의 배경은 그러니까 버려진 농촌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살아온 주민들인 것이다.


그가 스스로 짊어진 짐

지난 6월 5일, 세상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수배 중에 경찰서에 자진 출두했다. 5월 4일 이후 군사 정렴 당한 뒤 대추리와 도두리 마을의 분위기는 뒤숭숭하기만 했고, 평택범대위도 이렇다 할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못하자, 국방부는 승기를 잡았다는 판단 위에서 집요하게 주민들을 개별 접촉하면서 분열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군사지역으로 변모해가는 그런 모습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주민들의 그 짐을, 그는 주민의 대표로서 자기가 지기로 맘먹었는지 모른다.

그런 그의 병이 심각하다고 한다. B형 간염을 앓고 있고,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간경화에 간암으로 발전할지 모른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다. 그는 아마도 보석으로 풀려나지 못할 수도 있다. 법원은 정치인, 고위관료나 재벌들이 구속될 경우에는 하찮은 병만 있어도 보석으로 풀러주었지만, 민중들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겠는다는 태도를 고수해 왔지 않은가. 그러나 분명히 정부가 알아야 할 것은 그가 대화에 나오지 않고는 진정한 대화가 진행될 수 없다는 점이다. 주민들이 그가 없는 대화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죽어지내는 것 같은 주민들이 김지태 이장이 구속된 뒤 다시 일어서고 있고, 6월 18일 그런 주민들은 이른바 외부세력인 평택범대위와 함께 범국민대회를 성사시켰다. 철통같은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서.

곡기를 끊은 지 보름을 넘긴 문정현 신부의 첫번째 요구는 김지태 이장의 석방이다.

▲ 곡기를 끊은 지 보름을 넘긴 문정현 신부의 첫번째 요구는 김지태 이장의 석방이다.



청와대 앞에서는 평택미군기지 문제의 최종적인 책임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으므로 대통령이 책임지고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중단하라며 문정현 신부님이 아픈 몸을 이끌고 오늘로 16일째 농성 중이다. 신부님은 가장 먼저 김지태 이장을 비롯한 구속자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 신부님의 애절한 호소에도 지금껏 정부는 답을 회피하고 있다. 신부님의 단식이 언제까지 이어져야 하나, 지켜보는 게 고통이다.

그는 지금 평택구치지소에 수감 중이다. 수번 201번. 지난 3월에 잠시 구속되었을 때 나도 같은 번호였다. 주민의 대표인 그를 석방하지 않고는 정부가 대화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분을 축적하기 위한 얄팍한 수일 수밖에 없다. 그는 당장 풀려나야 한다. 그가 있을 곳은 주민들이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며 싸우는 대추리, 그곳이다.
덧붙임

박래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