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빈곤장애인의 '살아남을' 권리

[기고] 그가 강서구청 현관에 목을 맨 이유

지난 2월 18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인 한 장애인이 강서구청 현관 셔터 문에 스스로 목을 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구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18일에만 3번씩이나 자살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강서구청에는 어렵게 살아가는 장애인 수급자를 외면하고 결국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구청은 고인이 상습적으로 소란을 피우는 등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고 자기들은 할만큼 했다는 식으로 변명했다. 결국 이 사건은 그저 늘 있는 사건사고 가운데 하나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과연 그는 '억지'를 부린 것일까? 누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을까?


일하거나 일하지 않거나

일반적으로 사회안전망을 그물에 표현한다. 빈곤으로 추락하는 이를 더 이상 추락하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의미에서다. 가장 안전한 사회안전망은 누구도 그 그물코 사이를 그냥 통과해버리지 않도록 촘촘하게 짜여진 것이다. 한나라당의 "그늘진 곳에 촘촘한 사회안전망"이나 열린우리당의 "튼튼한 경제, 따뜻한 복지"도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안전망의 강화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 현실은 48분마다 한명이 자살하고 1분 30초마다 1명이 자살을 시도하는, 거칠 것 없는 수직추락의 처참한 행렬을 이루고 있다. 100만에 이르는 빈곤아동과 370만의 신용불량자, 100만에 이르는 단전단수가구,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환자들과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일하는 빈곤층', 심각한 청년실업과 어떠한 희망도 없는 암울한 미래만이 남아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은 그 제정취지에서 "국민이면 누구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일할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일을 하고 있거나 하지 않거나 상관없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면 수급권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사회 빈곤인구는 아무리 보수적인 통계를 인용하더라도 600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사회 유일한 그물망 적용대상인 수급자는 140만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최소 450만명 이상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누구보다 복지혜택이 절실한 이들이 무엇인가를 요구하면 노동능력이 있으면서 노동의지가 없는 '게으른' 사람으로 간주되고 오히려 이들에 대한 방치는 정당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가까스로 수급자가 되더라도 상황은 용이하지 않다. 이번에 사망한 장애인 수급자의 경우 현행법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한을 지원 받은 경우였다. 고인의 경우 최저생계비하에서 보장되어 있는 생계급여 최고액과 장애수당, 그리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정위탁으로 정부와 민간이 보장하는 최대한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고인은 삶의 불안과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대다수의 수급자는 평균 20만원수준의 낮은 생계급여로 극도의 궁핍한 생활을 유지하며 고통과 수치심을 참아내야 한다.


기초법 시행 5년

2005년은 기초법이 시행된지 5년째가 되는 해이다. 그동안 기초법의 광범위한 사각지대는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되어 왔으며, 정부 또한 올해 기초법 개정을 준비중에 있다. 개정의 방향은 사각지대의 해소라고 밝히고 있으나 오히려 이번 개정을 통해 근로능력자를 기초법 대상자에서 제외시키려는 흐름도 존재하고 있다. 현재의 기초법이 최저생계비 미만의 근로능력자의 수급권을 온전히 보장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근로능력자를 기초법 대상자에서 제외시킨다면 더욱더 광범위한 사각지대 빈곤층이 형성될 것이다. 정부기준의 '근로능력 있음'은 사실상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을 전제로 한' 복지는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떠한 지원도 제공되지 않음을 의미하며, 철저한 노동관리로 사회안전망을 대체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칼을 대야 하는 부분은, 법 취지와는 다르게 "최소한의 국민에게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도록 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이나 조건부수급기준, 낮은 최저생계비 등이다.


빈곤장애인의 '살아남을' 권리

지난해 10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장애인 수급자 이승연 씨가 헌법소원한 '기초법상의 최저생계비 위헌청구 소송'을 재판관 만장일치로 기각했다. 최저생계비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드는 추가지출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 씨의 주장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장애인의 추가지출에 대해 생계급여가 보장하지 않더라도 장애인을 지원하는 타 법령에 의해 부담이 경감되므로 단일한 최저생계비 기준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각종 감면은 소비를 할 수 있는 장애인에게 국한되어 있어 저소득 장애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빈곤장애인의 소득보장은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어 왔으며, 정부도 2006년부터 가구유형별 최저생계비 도입을 결정한 상태이다.

현재 정부는 가구유형별 최저생계비를 계측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 최저생계비 결정 과정을 보았을 때, 예산을 핑계로 실제 계측된 결과에 한참 못 미치는 액수로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장애인 빈곤의 문제는 노동, 교육 등과도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나 월 6만원의 장애수당 이외에는 별도의 소득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대다수 빈곤장애인의 소득보장대책은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이다. 2000년 자료에 의하면 장애인의 평균추가지출 비용은 15만7천원에 이른다. 2000년 이후 물가인상률만 반영하더라도 최소한 20만원이 넘는 추가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장애수당을 차상위계층에까지 확대하여 장애로 인한 빈곤화의 위험을 줄이도록 해야 한다.


빈곤은 국가폭력

빈곤은 단지 사회현상 혹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유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가 폭력이다. 모든 사람은 인간존엄성을 지니며,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적절한 주거를 가질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일할 권리, 품위 있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공정한 임금과 복지, 의료·물·전기 등 필수서비스를 차별 없이 누릴 권리 그리고 정치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 등은 인간존엄으로부터 나오는 기본적인 인권이다.

빈곤은 더 이상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책임이며, 국가의 책임이다. 노동을 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사회구성원은 최소한의 기본생활을 영위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빈곤을 양산하는 구조를 바꾸어야 하며,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도의 개선이나 예산의 확대는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빈곤과 차별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권리를 제기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강서구청에서 빈곤을 거부하며 몸서리쳤던 한 장애인 수급자의 죽음은, 우리사회 안전망의 모든 것을 취했음에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2001년 12월 추운 겨울에 '생존권 보장과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외치며 이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던 최옥란 열사의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3월 26일 최옥란열사 3주기를 맞는다. 잊혀지고 있는 수많은 빈민의 죽음 가운데 우리가 그녀를 기억하는 것은 그녀의 투쟁과 죽음이 우리에게 우리 사회안전망의 본질을 알려주며 일하거나 일하지 않거나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를 쟁취해야 함을 외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덧붙임

유의선님은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