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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준의 인권이야기] 농성보다 더 어려운 '일상'

요즘 서울 종로구청 앞에서는 노숙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시작한 사회복지법인인 성람재단의 비리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의 전면개정을 위한 농성이 벌써 20일을 넘어섰다. 그동안 구청 공무원들과 경찰에 의해 천막 등 농성물품을 빼앗기는 침탈을 4차례나 당했다. 지난 11일에는 최종책임자인 종로구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구청 안으로 진입한 활동가 26명을 경찰이 연행하기도 했다. 거듭되는 침탈에도 불구하고 천막을 뺏기면 비닐로, 비닐을 뺏기면 그냥 스티로폼만 깔고 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연행에 저항하는 한 장애인 <출처; 장애인문화공간>

▲ 연행에 저항하는 한 장애인 <출처; 장애인문화공간>



장애인에게 농성보다 더 어려운 '일상'

간혹 경찰병력이 증강되거나 구청 공무원들이 시비를 걸면 또 침탈하려는 건가 싶어서 긴장하게 된다. 밤에 편하게 잠을 잘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런 긴장보다 더 불편한 점은 먹고 자는 일상적인 문제다. 옷을 갈아입는 문제나 식사 문제는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나 어려운 점은 화장실 사용이다. 한동안은 구청 옆 종로소방서에 딸린 화장실을 사용해 왔지만 일과시간에만 가능하고 그 외에는 셔터를 내린다. 또 화장실이 소방서 안쪽 깊숙한 곳에 있어서 바쁘게 움직여야하는 소방관들에게 혹시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미안함도 있어 자주 가지는 못했다. 그나마도 요즘에는 이것조차 불가능하다. 구청 측에서 소방서에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고 한 그날 이후로는 소방관들의 ‘시혜’와 ‘동정’도 없어졌다. 이러다보니 주변 빌딩 중에 화장실을 개방하고 있는 곳을 찾아다녀야만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농성을 진행하면서 이런 문제들은 비장애인들에게도 불편함으로 다가오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불편함은 더해 보인다. 주변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화장실을 찾기는 어렵다. 그나마 구청 화장실은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법령에 따라 설치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구청 직원들이 출입을 허용하지 않아 확인할 방법도, 사용할 도리도 없다. 아예 구청 측은 정문에 돌로 만든 출입방지물을 만들어 비장애인만 통과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버렸다. 휠체어의 구청 진입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심산이다.

24시간 진행되는 농성이다 보니 장애인들의 불편함이 화장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한 중증지체장애인은 하루 종일 휠체어를 타고 농성장에 있다가 밤에는 주변에 주차해둔 농성차량 안에서 잔다.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보니 종일 휠체어를 타는 것도 답답한 일이겠지만, 휠체어에 올라가는 일도 내려가는 일도 혼자서는 하기 힘들다. 손을 씻고 머리를 감고 대소변을 처리하는 문제, 식사를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간혹 낮 시간에 활동보조인이 찾아오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밤 시간이다. 이렇다보니 밤 시간에 농성장을 지킬 사람을 확인할 때에는 항상 장애인이 몇 명이고 비장애인이 몇 명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족이나 주변에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과 함께 24시간 일상생활을 함께해본 적이 없다. 이번 농성을 통해 나에게는 첫경험이 된 셈이다.

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화, 험난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길

지난해 12월 19일 경남 함안에서 홀로 살아가던 근무력증 장애인 조 아무개 씨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낡은 보일러가 터져 물이 방안으로 흘러들어 왔지만 혼자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다가 얼어붙은 물 속에서 죽어갔다. 이를 계기로 촉발된 장애인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투쟁은 올 상반기를 활활 불태웠다. 서울시청 앞 노숙농성에 삭발투쟁, 휠체어에서 내려 한강대교를 기어서 건넌 투쟁은 결국 서울시청을 무너뜨렸고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 투쟁은 대구로, 인천으로, 그리고 전국으로 번져갔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위한 협의기구의 구성과 2007년도 예산 편성을 약속했다. 하지만 복지부가 기획예산처에 올린 예산 요구안은 장애유형 중 정신지체와 발달장애를 제외하고, 18세 이상 성인과 기초생활수급권자 및 차상위계층에게만 활동보조인을 파견함을 전제로 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한정된 예산을 이유로 뇌병변, 지체, 시각장애인에게 한정하여 우선적으로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시행하겠다는 내부적 의견을 밝혔고, 일부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은 이에 동조하거나 묵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지적인 ‘판단’에 기반한 스스로의 ‘결정’과 이의 ‘표현’이 원활하지 못해 활동보조인을 쓸 자격이 없고, 반대로 그런 판단과 결정과 표현이 원활하다면 활동보조인의 역할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이다. 이는 활동보조인서비스의 목표가 자기결정권을 확보하는 것인데도 상대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기 힘든 장애인은 배제하겠다는 궤변일 뿐이다.

복지부의 ‘2005년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18세 미만의 재가장애인 비율은 전체 재가장애인의 3.9%에 불과한 반면, 2005년 말 현재 인가 생활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인 중 18세 미만은 25.2%를 차지하고 있다. 또 전체 재가장애인 중 정신지체와 발달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6.4%인 반면, 생활시설에서는 무려 58.7%를 차지하고 있다. 복지부의 궤변과는 달리 정신지체와 발달장애인, 18세 미만의 장애인이 시설수용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종로구청 앞 농성은 성람재단의 비리척결이 그 첫번째 요구지만, 근본적으로는 수용시설의 비리와 인권침해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폐쇄적인 시설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함께 농성하고 있는 장애인들도 대부분 가족에 의해 또는 다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시설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금 시설에 갇혀 있지 않은 이들이 시설에 갇혀 있는 동료 장애인들을 위해 탈시설이라는 근본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탈시설'이 가능하려면 기존 시설을 무너뜨리는 일과 함께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활동보조인제도는 주거보장, 소득보장과 함께 자립생활의 필수적인 기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