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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4.16 그리고 4.17, 세월호에 중증장애인이 탑승했다면

[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 당일에 벌어진 일을 복기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4.16연대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추진하며 인권으로 4.16을 기억해보자고 제안한다. 기억은 행동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에 매주 공동 게재되는 연재기사가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만약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 전동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이 탑승했다면 생존 가능성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발달장애인이 탑승했었다면요? 아마도 한국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두 경우 모두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장애인권 활동을 하면서 비장애인의 평범하고 안전한 일상조차 장애인들에게는 위험하게 다가오는 상황이라는 것을, 나아가 장애인들에게는 훨씬 더 큰 위험인 ‘위급상황’이 언제든 발생될 수 있음을 계속 알게 됩니다. 한국사회에서 위태로운 세월호 안의 사람들과 같은 상태로 장애인들은 위험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죠.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바로 다음 날이었던 4월 17일 사망한 故 송국현 동지의 죽음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송국현 동지는 24년 동안 시설에서 거주하다가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 2013년 10월 ‘탈시설’했습니다. 장애등급이 3급이라는 이유로 송국현 동지에게는 활동보조인 서비스 신청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의료적인 잣대로 장애를 판정하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의 판정 체계 안에서 송국현 동지는 활동보조인 없이도 일상을 살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집에 화재가 발생해 불이 벽을 타고 침대 위 천장까지 올라왔지만, 송국현 동지는 자신의 몸 위로 떨어지는 불을 피하지 못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어장애가 심해서 소리도 지를 수 없었고, 중증의 신체장애로 침대 위에서 내려오지도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소식에 다들 마음이 무거웠던 시간이 계속되던 가운데, 4월 17일 송국현 동지의 소식은 많은 장애인과 활동가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2014년 4월 서울광장 세월호 분향소 옆, 국가인권위 앞에 마련된 故 송국현 동지 분향소 (출처: 비마이너)<br />

▲ 2014년 4월 서울광장 세월호 분향소 옆, 국가인권위 앞에 마련된 故 송국현 동지 분향소 (출처: 비마이너)


故 송국현 동지의 죽음은 단순히 국민연금관리공단의 행정 실수로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장애등급제의 반복적인 폐단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제의 폐단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전에 발생된 여러 사건으로 이미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2012년 활동보조인 시간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사망한 故 김주영 동지,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는 사이 호흡기가 빠져 사망한 故 허정석 님, 그리고 한 장애인이 추운 겨울 수도관이 터졌는데 피하지 못해 사망한 사건을 공단은 알고 있었습니다. 故 송국현 동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故 송국현 동지는 이전의 죽음과 동일한 이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기에 4.17은 4.16과 마찬가지로 참사입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장애인의 장애 상태도 직접 눈으로 파악하지 않은 채 의사들의 진단으로만 장애 정도를 판단하지 않았다면, 故 송국현 동지는 이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장애등급제가 이미 정해진 예산 범위 안에서 의료적 기준으로만 서비스 제공을 결정하는 기제로 악용되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故 송국현 동지는 이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런 야만적인 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일까요? 왜 우리는 이런 야만적인 사회에서 살아야 할까요? 저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은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분리하고 배제하는 차별의 기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분리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안정성을 중시하는 사회로 발전해왔다면 세월호 참사와 같이 괴물의 세상에서나 있을 법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같은 사람으로서 함께 더불어 살아갈 책임이 있는 故 송국현 동지를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노동권과 생존권, 안전권 등 인권을 존중받는 사회는 낯설지만, 집 안에서 제한적으로 생활하거나 지역사회로부터 배제된 채 시설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익숙합니다. 만약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사회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이제 장애인뿐만이 아니라 획일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지역사회로부터 계속 멀어지는 상황입니다. 노인요양시설과 정신요양병동, 장애인거주시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은 장애인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차별의 기제를 제거하고 인권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운동으로서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운동인 것이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있었다면 생존할 수 있었을까요?’라는 질문에 ‘물론입니다. 그 사람은 당연히 살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사회가 된다면 모두가 안전하게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사회로 우리 사회가 발전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따라서 4.16 인권선언은 탈시설-자립생활 운동과도 만납니다. 우리는 4.16 인권선언을 통해 모두가 안전하고 품위 있게 존엄을 지키며 생활할 수 있는 사회와 어떤 사람이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지역사회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때,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자본의 야만성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고, 그렇게 무채색 한국사회는 다양한 색을 입으며 변화할 것입니다. 4.16 인권선언을 통해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라고 불려온 이들이 지역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더는 ‘사회적 약자’로 머물지 않길 기대합니다.
덧붙임

최재민 님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