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움틈]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독립의 개념을 바꾼다

장애여성의 '주체적인' 숨쉬기 운동

예전부터 '치료'라는 말에 몸서리치던 우리들이었다. 장애인이 음악 좀 할라치면 그것이 음악치료가 되고, 운동을 하면 재활치료가 되고, 연극을 하면 연극치료가 되고, 그림을 그리면 미술치료로 재빠르게 이름 붙여졌다. 때에 따라서 치유의 목적을 가지고 그러한 활동을 하기도 하겠지만, 어떤 활동의 목적과 내용을 떠나서 일단 '장애'라는 것이 치료되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손쉬운 연결이 가능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여성이 내용을 만들어나가는 연극공연과 미술전시를 통해서 장애여성과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독립이 장애에 대한 의료화, 장애인에 대한 시설화에 반대하는 것이니 우리의 연극과 미술도 일방적 치료의 도구에서 소통의 통로로 바꾸고, 대상에서 주체가 되어 '독립적'으로 하면 되겠다는 마음이기도 했다.


의존이 아닌 종속으로부터의 독립

먼저 장애인의 독립의 권리는 비장애인이 생애주기 안에서 성인이 되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장애인은 의존적이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장애인이 의존적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회는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이나 기구에 보조를 받는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기존 사회의 구조에서 비장애인과 같은 방식으로 교육을 받거나 생산, 재생산을 할 수 없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의 원인은 장애이고 그것의 결과는 보호였다. 이러한 논리는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동안 무리 없이 받아들여져 온 것 같다. 그동안 원인에 대한 의심 없이 장애인에 대한 많은 담론과 정책들은 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장애인은 과연 의존적인가? 의존성과 독립성의 경계는 무엇인가?

비장애인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기구에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 자체를 가지고 인간의 의존성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것자체가 인간의 조건이다. 심지어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가사노동을 수행할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있지만 남성의 경우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아왔다. 가사노동을 여성에게 지시하고 결정할 '능력'이 있는 경우에. 그러한 구조 때문에 가사노동은 보이지 않는, 가치 없는 노동이 되었고 그러한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공식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만들고 낮은 위치에 머물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장애를 인간이 가진 다른 조건으로 보지 않고 의존의 원인으로 만드는 그 구조를 문제 삼는다. 장애라는 조건은 비장애인과 다른 방식과 다른 양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일상에서의 소소한 부분에서부터 중요한 선택에까지 보호를 명목으로 결정권을 박탈해도 좋다는 의미가 될 수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현재 장애인운동계에서 '자립생활운동'이라는 큰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고 필요한 사회적인 지원을 제도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장애를 고쳐야할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장애라는 조건을 인정한 위에서 일상적 생활과 사회적인 활동을 제한 없이 해나가기 위한 것이며, 장애인은 특별한 시설에서 수용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을 포함한다.

장애여성의 독립에 관련된 전시를 준비하면서 장애여성과 전시를 함께 준비했던 비장애여성들의 독립에 관한 여러 차원의 이야기들이 모아졌다. 그 이야기들은 자신이 주인이 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장애/여성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주변의 시선, 위험, 제도들 그리고 장애/여성의 독립적인 의사결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인식에까지 다양한 범위를 가지고 있다.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

영국의 초기 여성주의자 버지니아울프는 자신의 책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얼마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장애여성이 가족 안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할 때 자신의 공간을 허락받기 어렵다.

장애여성의 독립을 주제로 열린 장애여성공감 난장 2005 [일평단심]에서 전시된 작품. 장애여성이 자신의 공간을 갖지 못했던 경험을 공간으로 표현한 '있었지만 없었던' (워크샵팀+가구팀)

▲ 장애여성의 독립을 주제로 열린 장애여성공감 난장 2005 [일평단심]에서 전시된 작품. 장애여성이 자신의 공간을 갖지 못했던 경험을 공간으로 표현한 '있었지만 없었던' (워크샵팀+가구팀)



사회 안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 장애여성의 주거권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그것은 그만큼 장애여성의 경제적, 의식적, 성적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된다. 어느 곳이든 공간은 권력에 따라 배치되고 의미가 부여된다. 노동자와 사장의 일터가 다르듯이, 지하철에서 '쩍벌남'이 주인이 되듯이, 권력이 없는 여성은 집안에서 대개 부엌이라는 노동공간에 보조자로 머물러야 하듯이, 허락 없이 손을 덥석 잡고 마음대로 머리를 쓰다듬고 휠체어에 기대면서 장애여성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침해하듯이.

장애여성들은 부모나 시설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공간을 갖고 나서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도록 위협하는 것이 도처에 존재한다. 남성 없이 여성(들)이 산다는 것이 알려지면 위험해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배달서비스를 시키지 않아도, 화장실을 훔쳐보는 성폭력범들이 '이웃'으로 존재한다. 전에 있었던 시설로부터 간섭과 관리가 멈추지 않는 경우도 있고, 장애여성의 독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활동보조인이나 가사도우미로부터 '위험한데 왜 혼자 사느냐', '왜 이런 책을 읽느냐', '왜 이런 옷을 입느냐'는 (남성이나 비장애인은 듣지 않는) 말을 통해 장애여성의 의사와 개인적인 공간을 무시당하기도 한다.

장애여성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간섭하고 관리하려고 하는 주변의 인식을 표현한 작품. '당신의 사생활은 안전하시나요?' (김상)

▲ 장애여성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간섭하고 관리하려고 하는 주변의 인식을 표현한 작품. '당신의 사생활은 안전하시나요?' (김상)



어떻게, 누구와 살아갈 것인가

장애를 가진 여성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근본적인 변화들이 필요하다. 시혜적인 정책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이 노동하고 경제력을 가질 수 있도록 불평등이 해소되어야 한다. 시설이나 원치 않는 가족 안에서 사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있어야만 그 안의 차별이나 폭력이 종식될 수 있다.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보호는 명백한 인권침해이다. 장애여성이 독립성을 가지고 삶의 결정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구체적인 개인으로, 이웃으로, 동료로, 친구로, 가족으로, 애인으로 관계맺음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소수자의 문제도 그러하듯이, 장애/여성의 문제는 어떤 소외된 집단의 소외된 문제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부대낌 속에서 드러나고 변화가 만들어져서 기존의 가치와 기준을 문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한 연대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덧붙임

타리 님은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