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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민주화’를 넘어 ‘자립’으로

성람재단 비리척결로부터 시작하는 ‘탈시설-자립생활운동’

성람재단 문제가 외부로 알려진 계기는 2003년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장애인 인권회복과 성람비리재단의 퇴진을 요구하며 6개월간 파업농성을 진행한 것이었다. 성람재단의 한 요양시설에서 생활하던 아이가 ‘지갑에서 돈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고 침대에 손발이 묶인 채 이틀 동안 구타를 당해 숨졌다. 또 살인적인 추위로 유명한 철원에서 한겨울에 하루 1시간만 난방을 해 밤새 추위에 떨다가 동사하는 사건도 있었다. 또 생활재활교사들과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이사장 소유 농장에서 하루 14시간씩 정화조 청소, 식사 준비, 가축 도살 등 강제노동에 동원되기도 했다. 하지만 종로구청, 서울시청 등 담당공무원들은 재단이 제공한 호화 콘도에서 접대를 받으며 행정 지도 점검을 실시해 부실감사와 유착의혹을 받았다.

동양 최대 규모의 비리시설을 고발한다

2006년 경기도경찰청은 여성시설생활인에 대한 성추행 혐의를 수사하던 중 성람재단 산하 1개의 시설에서 27억 원에 상당하는 국고횡령 혐의를 밝혀냈다. 이사장은 횡령액으로 아들을 해외유학 보내고 부동산에 투자해 재산을 증식했다. 나머지 시설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국고를 횡령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음에도 수사는 나머지 시설로 확대되지 않고 있다. 현재 이사장의 아들이 재단 이사로 취임했고 친구가 대표권을 가지고 있는 등 족벌 지배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이사장은 결국 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 6월 구속 수감되었고 관련자 18명은 불구속 기소되었다. 이사장은 27억 원의 횡령혐의 중 시설장애인의 주부식비와 피복비 등 9억5천만 원의 국고를 횡령한 사실을 인정하고 현재 보석으로 풀려나있으며 선고공판을 연기한 상태이다. 하지만 담당 행정기관인 종로구청은 여전히 재판결과만을 기다리며 관리감독해야 할 직무를 유기하고 있으며 오히려 비리법인을 비호하고 있다. 종로구청은 성람재단의 거액 비리 문제를 ‘노사관계로 발생한 경미한 문제’로 치부하며 외면하다 사회단체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종로구청장은 ‘난 바빠서 잘 모른다’고만 되풀이했고 생활복지국장은 ‘종로구청은 할 일이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하는 등 여전히 방관과 침묵으로 비리법인을 비호하고 있다. 또한 성람재단에 대한 종로구청의 행정처분을 촉구하는 항의방문단에게 사회복지과 직원들은 오히려 “성람재단 비리(액) 별로 안 되는데 뭘 그러냐”고 이야기하는 등 사태를 왜곡하면서도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성람재단의 비리가 알려지고도 4년이나 지나도록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에 수용시설의 인권침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를 해온 장애인·인권단체 등이 모여 '성람재단의 비리척결‘을 요구하며 공동투쟁단(아래 공투단)을 결성해 종로구청 앞에서 22일째(2006년 8월 16일 현재)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공투단은 종로구청이 비리재단의 사태를 책임지고 현 이사진을 전원해임하고 새로운 민주적 이사진으로 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성람재단 이사진의 담당 행정기관인 종로구청 앞에서 성람재단 비리 척결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출처; 장애인문화공간>

▲ 성람재단 이사진의 담당 행정기관인 종로구청 앞에서 성람재단 비리 척결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출처; 장애인문화공간>



이러한 요구는 실제로 법인의 민주적 운영구조와 공공성확보를 위해 기본적으로 확보해야 될 부분이다. 이사장과 측근의 일부만 형식적으로 처벌한다고 해서 사회복지법인이 민주화되지는 않는다. 이사장 일가는 물론, 그 측근들의 뿌리를 뽑아야만 법인의 사적 소유구조를 깨고 복지재벌을 해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성람재단과 같은 복지재벌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불쌍한 장애인 데려와 보살핀’ 사회적 명성과 ‘헌신과 봉사’로 이뤄온 자신들의 재산을 빼앗길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복지재벌들은 자신들이 ‘사람 장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성람재단 비리척결투쟁은 비민주적으로 사유화된 사회복지구조를 깨는 데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불쌍한 장애인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시설 대표들에게 그들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음을 선언하는 투쟁이라는 의의가 있다.

‘수용시설 불가피론·유일론’을 깨자

사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수용시설 불가피론’이 우리사회에 고질적으로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시설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 ‘내가 죽으면 내 자식을 어떻게...’와 같은 논리들은 수용시설 불가피론을 넘어 ‘수용시설 유일론’이 되고 있다. 최근 중증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자립생활운동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복지예산의 규모를 보았을 때는 시설지원 예산에 비해 자립생활지원 예산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 상황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수용시설 유일론과 불가피론’은 그야말로 다른 방식의 삶을 가능케 하는 지원이 ‘전무’한데서 기인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시설에서 수용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사회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는데 필요한 △활동보조인 제도화 △주택지원 △소득 보장 △노동권 보장 △교육문화 및 기타 사회적 활동의 보장 등 이런 내용들은 이미 헌법에 보장하고 장애인복지법과 관련법들에 보장되어 있는 기본적인 권리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는 권리를 권리로서 보장하기 보다는 적은 예산으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정부 관료이나 기업들이 자의적으로 ‘노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능력하다고 낙인찍은 사람들을 ‘수용하여 통제’하는 방식을 ‘유일한 복지’라고 생각하는 흐름이 대세다. ‘수용시설 유일론과 불가피론’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망각하고 있는 국가와 이를 핑계 삼아 동정론에 기대어 영리를 추구해온 복지기득권층의 생존논리일 뿐이다.

‘시설 민주화 운동’을 넘어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으로

시설 민주화운동 역시 결과적으로 시설 생활인들을 시설로 가둘 뿐이다. 시설 민주화운동을 넘어 탈시설-자립생활운동이 필요하다.<출처; 장애인문화공간>

▲ 시설 민주화운동 역시 결과적으로 시설 생활인들을 시설로 가둘 뿐이다. 시설 민주화운동을 넘어 탈시설-자립생활운동이 필요하다.<출처; 장애인문화공간>

우리가 수용시설을 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용시설이 다수 존재하는 한 시설불가피론을 유지·확산시키기 위한 복지기득권층의 몸부림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대어 국가는 책임을 회피할 것이고, 국민들도 별다른 부담 없이 주변으로부터 장애인을 격리할 수 있기 때문에 침묵에 동참할 것이며, 가족들은 저비용으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격리’할 수 있기 때문에 침묵할 것이라는 사회의 부조리한 카르텔이 형성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수용시설을 없애기 위한 투쟁을 선언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왜곡된 사회복지구조와 복지재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는 계속해서 별다른 변화 없이 수용 일변도의 정책으로 일관할 것이다. 결국 장애인은 시설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수용시설 불가피론과 유일론’이 강화될 것이 뻔하다.

공투단이 내걸고 있는 ‘성람재단 비리척결’은 이사장 개인의 국고횡령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복지를 팔아 사람 장사하는’ 사람들을 이 사회에서 몰아내는 투쟁이다. ‘수용시설 유일론’은 장애당사자들이 요구하는 자립생활운동과 상충되고, ‘불쌍한 장애인은 시설로 가야한다’는 명제는 당사자의 인권과 상관없이 시설에 수용될 것을 개개인에게 강요한다. 따라서 이번 투쟁은 사회복지재벌의 해체를 통해 시설의 민주적 운영과 공공성을 확보함은 물론이거니와 ‘시설불가피론-유일론’에 반기를 들고 ‘탈시설-자립생활 운동’의 물꼬를 트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종로구청 앞 천막이 철거되고 또 철거되어도 장애운동·시설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종로구청 앞으로 모이고 있다. 시설로 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당당하게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 멀고도 긴 투쟁을 시작하고 있다.
덧붙임

임소연 님은 사회복지시설 생활인 인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 성람재단 산하 복지시설 내 인권침해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분은 [인터넷장애인신문 AbleNews(www.ablenews.co.kr)]에 박정혁 님이 기고한 '자립생활 VS 시설생활-시설생활이 사람답지 못한 이유'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