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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커터칼’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갑작스런 커터칼의 공격으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신체적,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 박대표에게 달려들었던 지아무개 씨의 법정구속이 확정됐고, 언론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을 제기하며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핸드폰 통화도 오래하더라는 시비까지 걸고 있다. 정치권은 발 빠르게 ‘표 계산’을 굴리며 수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 사건을 ‘정치 테러’로 확정지었고, 커터칼이 몰고 온 ‘사회적 외상’을 성찰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박대표가 피해를 입은 것은 분명하다. ‘카터칼’의 폭력이 있어서는 안될 일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지 씨의 배후에 누가 있건 없건, 그가 호소한 울분을 외면한 채 오직 박대표와 한나라당만이 유일한 피해자인 양 몰아가는 정치권과 언론의 태도는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전두환 정권이 보호감호제를 만들어 내가 이 고생을 한다. 한나라당은 그 후예”라며 용의자 지 씨가 호소한 울분은 어느새 ‘수사 비협조’로 둔갑하고 말았다. 지 씨는 1998년부터 청송보호감호소로 이감되어 지난해 8월 가출소할 때까지 총 14년 4개월간 복역한 후 3년간 보호관찰대상 처분을 받았다. 전과범이자 보호관찰대상이라는 이유로 그는 ‘움직이는 핵폭탄’으로 낙인찍히고 말았고, 이번 사건으로 ‘소재가 불분명한 범죄 경력자’ 1000여 명이 덩달아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 되었다. 이번 사건이 보호관찰 기간 중에 발생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폐지된 사회보호법과 보호관찰제도는 예의 그 ‘지독한’ 차별적 편견과 함께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사회보호법이 무엇이었나. 1980년 군사쿠데타 직후 전두환 정권이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만든 사회보호법은 이중처벌과 인권유린의 산실이 아니었던가. 청송보호감호소 안에서 벌어졌던 무자비한 폭력과 잔혹한 강제노역은 상상하기조차 힘들 만큼 끔찍한 것이었으나, 피해자들의 존재는 사회로부터 잊혀졌다. 2002년부터 7차례나 피보호감호자들이 곡기를 끊고 사회보호법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온몸으로 고발하고 잠든 양식을 일깨운 뒤에서야 25년이나 계속됐던 제도적 폭력은 비로소 중단됐다. 사회보호법이 지난해 폐지되기까지 양산해온 피해자만 해도 무려 1만3413명에 이른다.

그러나 피보호감호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강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정치권이 표계산에 일희일비하며 박 대표의 피해만을 부각시키는 동안, 대물림되는 가난 속에서 범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전과자가 된 후 제대로 된 사회적응 훈련은 고사하고 사회적 차별과 배제에 내몰려온 1만여 명의 또 다른 ‘지아무개들’은 지금도 사회보호법의 어두운 유산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국가가 자행해온 제도적 폭력에 대한 공식 사과가 단 한 차례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국가테러’에 의해 25년 동안 희생되었던 이들을 ‘핵폭탄’으로 몰아대며 감시와 통제 강화만을 되뇌며, ‘이중의 피해’를 만들어내고 있다.

커터칼로 인한 사회적 외상은 우리 모두에게 남아있다. 외상의 치유는 역사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사회보호법의 피해자들에 대한 치유와 지원도 절실하다. 피해자가 된 가해자와 가해자가 된 피해자, 역사의 모순 속에 더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