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 배경내의 인권이야기 ◑

'집단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빛과 그림자


이른바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높아진 인권의식과 여전히 척박한 인권의식의 극단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번 사건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사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한 시민들의 공분은 문제투성이 수사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여경에 의한 조사 요청 거부, 가해자와 피해자의 직접 대면 강요, 피해자에 대한 경찰의 폭언, 비공개 약속 위반 등 경찰의 폭력적인 수사방식은 차례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결국 대국민 사과와 수사체계 개선 약속으로 이어졌다. 뒷짐 지고 있던 여성부와 국가인권위원회도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피해자 인권침해 조사에 나섰다. 성폭력 사건에서 예외 없이 고개를 내밀곤 하던 피해자 유발론 혹은 피해자 행실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점도 높아진 인권의식을 반영한다.

하지만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여론이 '가해자' 엄벌만을 촉구하고 있는 사이, 경찰의 또 다른 강압수사와 언론의 마구잡이식 보도, 네티즌의 행보 뒤에 똬리를 튼 폭력성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채 세를 불리고 있다. 경찰은 애초 확인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의 동생도 성폭력 피해자라고 말했으며 '가해자'들이 밀양연합이라는 폭력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고 발표했다. 가족에게 피의 학생의 체포 사실을 알리지 않아 가족이 가출 신고를 한 예까지 있었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피해자의 성씨와 나이는 물론 주소지를 구 단위까지 공개해 피해자의 신분이 노출될 위험에 빠뜨렸고, 피의 학생 하나의 신분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인터뷰 기사를 실어 피의자의 사진이 인터넷을 떠다니도록 만들었다.

네티즌들은 가해자로 확정되지도 않은 피의자들의 사진과 이 사건과는 무관한 다른 사람들의 사진, 핸드폰 번호, 합격 예정 대학과 직장까지 추적해 여기 저기 퍼나르며 응징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원정 응징론'까지 가세해 폭력으로 피의자들을 응징하자는 선동이 꼬리를 문다.

'철저 수사=구속 수사'라는 공식에 기반을 둔 엄벌 촉구론도 문제다. 성폭력 사건을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무조건 구속', '구속 엄벌'을 요구하는 것은 인권의 원칙에 반한다. 증거인멸이나 도주 위험이 있다면 모를까, 불구속수사는 예외가 아닌 원칙이 되어야 한다. 특히 법적 방어능력이 미약한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수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범죄의 성격이 잔혹하고 그리하여 신속한 해결과 엄벌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을수록 수사는 더욱 신중해야 하고 피의자 인권은 더욱 소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세상과 고립된 구속 상태에서 강압에 못 이겨 허위 살인 자백을 해야 했던 10대 소년수의 억울한 옥살이를 되풀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구속수사를 최소화하는 대신 피해자 보호를 위한 별도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선정적 접근이나 사적인 보복은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할 뿐이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의 인권이 보장되는 수사절차의 확립과 피해자에 대한 사후 지원, 나아가 성폭력 사건 예방과 가해자들의 의식 변화를 위한 인권교육의 전면 실시라는 기본을 닦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 배경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