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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놀이와 인권이 만나면~

쉼터 청소녀들이 겪은 차별 이야기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대부분의 인권교육은 어른들이 자리를 마련하고, 청소년들은 그냥 또는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인권을 알고자 하는 욕구나 동기가 그만큼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교육에서는 무엇보다 인권에 대해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흥미를 너무 쫓다보면 자칫 앙꼬 없는 단팥빵이 되기 쉽다. 그렇다면 놀이와 인권이 만나 흥미로운 인권교육을 탄생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날개달기 - 쉼터 청소년 들여다보기

가정이나 학교 등에서 경제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적절한 돌봄과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집을 나와 쉼터를 찾게 된다. 그런데 스스로 집을 탈출했건 아니면 가정환경 때문에 쉼터에 맡겨졌건 그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런 상처를 개인적으로 재수가 없어서 겪게 되는 일이나 운명처럼 어쩔 수 없는 일로 쉼터의 청소년들이 받아들이지 않도록 인권교육을 통해 보듬고,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이런 속 깊은 이야기를 풀어놓기란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이번 인권교육에서는 청소년으로서 겪었던 차별의 경험들을 나누면서, 한편으론 쉼터 청소년들의 상황을 고려해서 더 강조해야 하는 지점이나 사용하는 언어 등에서 주의를 기울였다.

더불어 날개짓 1 - 행복을 부르는 인권

이번에 찾은 쉼터에는 청소녀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인권을 사전적인 의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청소녀들에게 인권은 자신과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우선 청소녀들이 각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본 후 그 순간을 그림이나 단어 등으로 표현하도록 했다.

몇 명의 청소녀들은 돈이 생겼을 때 행복하단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돈 자체가 주는 만족감보다는 그걸 통해 자기가 필요한 물건이나 먹을 것을 사고,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것에 행복해 했다. 또한 ‘남자 친구가 생겼을 때’, ‘아빠 만날 때’, ‘그룹 홈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사는 것’, ‘쉼터에서 생일잔치 했을 때’ 등 청소녀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을 넘어 또 다른 가족을 만들고, 그 안에서 지원과 지지를 받을 때를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떠올렸다.



청소녀들의 이야기를 마치고, 권리 그림과 내용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그 순간 충족된 필요와 욕구를 인권과 연결해서 설명했다. 돈 자체가 필요하기보다는 인간다운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을 가지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권리라는 것을 그리고 특별히 부모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보살핌과 지원을 받는 것 또한 청소년들의 권리라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청소녀들이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청소녀들에게 제한되는 권리는 무엇이며, 어떤 상황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는지 빙고 게임을 통해 살펴봤다.



더불어 날개짓 2 - 차별을 찾아 빙고!

4명씩 두 모둠으로 나눠 이제부터 빙고 게임을 한다고 하자 처음에는 ‘그거’라며 시시해하더니 곧 이어 머리를 맞대고 상대 모둠의 눈치를 살피며 소곤소곤 칸을 채워나갔다. 놀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리라. 우선 9칸짜리 빙고판을 만든 후 각 칸마다 청소녀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차별은 어떤 것이 있는지 채우도록 했다.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한 후에 빙고 게임을 시작했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경제적으로 못 산다고 차별해요. 부잣집 애들이랑 아예 처음부터 시작이 달라요”라며 가정형편이나 성적 때문에 겪는 차별에 대해 지적했다. 이어 상대편 모둠은 “잘못을 할 때 ‘너 같은 게 왜 태어났냐’며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인권침해”라고 했다. 아까는 자기네 모둠이 없는 걸 상대편 모둠에서 얘기하자 시무룩해 하더니 상황이 역전되자 이내 화색이 돋다.



“놀지 말고, 공부 좀 해라”,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여자니까 하면 안 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린 게 뭘 안다고”, “너네 부모가 그렇게 키우던” 왔다갔다, 한 가지씩 발표를 하고 나니 대부분의 칸이 지워졌다. 나이가 어리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그리고 부모나 가정 형편을 이유로 자신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인권침해라는 걸 청소녀들의 언어로 표현해 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들을 때 화가 나고, 억울해서 바로 하고 싶은 말을 했던 청소녀도 있지만 대부분의 청소녀들은 돌아올 보복이 두렵고, 무서워서 제대로 말을 못하고 꾹 참는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지금이라도 그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말풍선에 담아보자고 하자 “너나 잘 하세요”라는 ‘친철한 청소녀’부터 “저희 의견 좀 들어주세요”의 호소형, “너한테 욕먹으려고 태어난 거 아니거든”의 반항적인 답변까지 거침없이 쏟아냈다. 물론 청소녀들이 다시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혼자서 인권침해에 맞서는 건 어려운 일일 게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청소녀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싸가지’ 없는 행동이 아니라 권리침해에 대한 정당한 행동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맞대어 - 흥미로운 인권교육이 되려면

놀이에만 너무 치중하거나 인권의 내용만 억지로 주입하려고 할 때 인권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다행히 이번에는 빙고 게임을 하면서 청소녀들은 ‘~할 권리’처럼 명명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에게 있는 권리를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었다. 또한 놀이라는 방식을 통해 청소녀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인권교육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승패를 중심으로 놀이를 했던 경험들 때문에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거나, “이거 이긴다고 상품도 없잖아요”라며 흥미를 보이지 않는 청소녀들도 있었다. 또한 상대방의 이야기보다는 자칫 자기 모둠에만 집중하기도 해 중간 중간 분위기를 전환시켜가며 빙고 게임을 진행해야 했다. 따라서 놀이를 할 때에는 그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나 규칙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놀이가 끝난 후에는 경쟁적인 놀이와 비교하면서 장점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