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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주민소환제도에 만족해선 안 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제도 중 하나인 주민소환법이 2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주민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지방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 대해 임기 중이라도 일정한 요건과 절차를 거쳐 소환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지방 정부와 의회의 권한이 점점 강화되면서 지방분권화와 지방자치가 더욱 확대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선 지방단체장 혹은 의원이 비리를 저질러 사법처리 되거나 민의에 반하여 독단적으로 행정을 추진하여도 별다른 견제장치가 없던 상황에서, 주민소환법이 제정된 의미는 분명 남다르다.

주민소환법의 내용도 긍정적이다. 특히 주민소환투표의 청구사유를 제한하지 않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 동안 한나라당 등은 주민소환제도가 악용될 우려를 제기하며 소환요건과 사유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해 법안의 내용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었다. 소환사유를 제한하지 않는 것은 불법행위뿐만 아니라 합법의 이름 아래 민의를 거스르는 경우까지 소환이 가능하게 한 것으로, 독일, 미국, 일본 등 이미 주민소환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에도 매우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소환제도가 지방 차원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중앙 차원이라도 고삐 풀린 대의권력이 민의를 저버렸을 때 어떤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2년 전 한나라당,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회의 다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대통령 탄핵절차를 개시했던 것이다. 당시 곧이어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의회의 폭거를 심판할 수 있었지만, 국회의원에 대한 심판은 선거 때로 국한될 수 없다. 아울러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선출직 공직자에 대해서까지 소환제도는 확대돼야 한다.

아울러 현재 국회의원에게만 허용된 법률제정 권한도 앞으로는 국민 스스로가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스위스 등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국민발의제도가 그것이다. 국민발의제도는 국민이 스스로 법안을 발의하고 투표를 통해 제정할 수 있으며, 국회에 의해 제정된 법률에 대해서도 투표에 부쳐 거부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러한 발의제도가 지방 차원에서도 가능해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소환제도가 대의권력에 대한 사후적인 통제장치라면, 발의제도는 국민 스스로가 정치의 주인으로 서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하겠다.

애초 대의제도는 민주주의와 양립 불가능했던 엘리트 정치를 뜻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민주주의란 외피를 쓰고 실현 가능한 유일한 대안으로 일컬어지며,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력을 가로막아 왔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대의제도만을 고집하는 것은 가장 낙후한 민주주의에 만족하는 일이다. 주민소환제도에 머물지 않고 국민발의제도 등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더욱 더 확대해 나가야만, 대표를 뽑을 때만 자유롭고 이후엔 대표자의 노예로 돌아가는 ‘노예의 자유’를 벗어던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