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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탈핵, 에너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

올해로 후쿠시마 핵사고 15주년이다. 후쿠시마 핵사고는 기술적 해법으로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핵발전 산업계의 주장과 논리가 얼마나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를 일깨웠다. 사고 이후, 핵발전은 세계적으로 에너지 전환의 주요 수단에서 밀려났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이제 핵발전소를 더 지을 곳도 없고, 당장 에너지 수요에 비해 건설기간도 너무 길다’는 발언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는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핵사고는 한번 일어나면 공동체의 삶터는 물론 생명과 안전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한다. 그저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고에 안도할 뿐, 그 가능성과 위험을 모르지 않는다. 핵발전소는 늘어도 사용후 핵연료 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외진 곳에 핵발전소가 지어지면, 산업단지에 저렴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장거리 송전탑 건설로 이어지고 그것은 누군가의 일상과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한국사회는 핵발전을 확대 해야 하는가? 누구의 이해로 지금의 핵발전은 정당화되는가?

권력 구조가 바뀌어야 에너지 민주주의는 가능하다 

에너지가 매우 중요한 사회 기반이라는 점에서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할지를 다루는 에너지 정책에 대한 결정권, 에너지 민주주의는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전원개발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역사다. 에너지 생산과 폐기시설은 언제나 인구가 적고 토지 가격이 저렴한 농어촌 지역에 집중되며 지역의 삶터는 언제든 순식간에 산업 정책을 뒷받침하는 배후지로 전락해왔다. 일방적인 정책결정과 지역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위험을 국가는 경제적 보상으로 무마하려고 해왔다. 그렇게 동해안에 세계최대 핵발전소 밀집단지가 들어섰다. 국가가 지난 수 십년동안 자본과 산업에 저렴한 에너지를 제공하기 위한 전원개발을 일방적으로 해온 결과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이재명 정부는 핵발전소 건설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 '공론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핵발전소를 새로 지을 곳도 없고, 건설 기간도 길다는 이유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부정해왔던 정부는 이제 국민의 압도적 여론이라며 은근슬쩍 건설을 추진하는 중이다. 두 차례의 정책 토론회와 대국민 여론조사가 ‘공론화’ 과정으로 둔갑했고, 정부는 발전소 건설이 국가경쟁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한다. 반면 전력수요증대의 정당한 이유나 핵사고의 위험, 그로부터 파생되는 회복불가능한 피해, 발전소 인근 주민의 건강권,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 등 오랜 세월 제기된 핵발전을 둘러싼 문제에 대한 공론을 모으는 일은 실패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공론화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왜소한 형식의 여론 조사가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어버린 지금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숙의과정 마련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고 있다.   

에너지 정책 숙의 과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험은 문재인 정부 시절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대표적이다. 당시 노후원전 수명연장 중단, 신규 핵발전소 백지화를 밝히며 ‘탈원전/탈핵 시대’를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는 갑자기 공론화 카드를 꺼내들며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공론화위원회에 위임했다. 그동안  국가는 자본과 산업생산을 위한 저렴한 에너지 생산을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다. 지역주민이나 시민들은 에너지정책 수립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왔고, 에너지 정책은 모두를 위한 보편적인 권리가 아니라 불평등하고 비민주적이었으며 때론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공론화위원회의 숙의과정은 이러한 에너지 체제의 구조적 불평등과 기존 전원개발 방식의 한계를 돌아보며 핵발전소의 신규 건설 여부를 검토하고 결정했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공론화위원회’는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에너지 민주주의’를 향한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의 논의가 거듭될수록 건설 매몰 비용과 원전 수출 및 산업 생태계 붕괴와 같은 국가경제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오히려 에너지 정책에 내재되어 있는 강고한 자본의 논리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에너지 정책은 한국사회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지도다. 우리에게 주어진 공론장은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열린다. 따라서 에너지 민주주의는 필요한 정보나 논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데 그치는 '형식적 숙의'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 에너지 민주주의는 기존의 권력구조에 변화를 추구하는, 즉 에너지 체제의 소유와 운영을 민주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권력과 자본이 에너지를 틀어쥐고 이윤 축적 수단으로 사용해 온 결과,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생산하고, 누구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어 왔다.우리는 공론조사를 정치적 명분으로만 소비하려는 정부에 맞서 민중의 이해와 필요에 기반한 생태적 에너지 생산과 소비 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탈핵, 안전하고 존엄한 세계를 원하는 모든 이들의 요구 

에너지에 대한 공공적 소유와 민주적 통제는 기후위기 시대 더욱 절실하다. 생태적 한계와 무엇을 위한 에너지 수요인지에 대한 질문이 빠진 채, AI 데이터 센터,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을 위한 발전소 건설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핵발전은 정당화되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에너지 시장화를 위한 통로가 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신규핵발전과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이에 답하기는커녕 대규모 전력이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지자체는 일부 주민의 의사를 앞세워 핵발전소 건설 유치 경쟁에 나서고 국가는 돈으로 지역 주민들의 권리를 짓밟으려 한다. 전원개발 역사에서 익히 보아온 풍경이다. 

국가의 일방적인 에너지 정책으로 인해 삶터가 무너지고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주민들의 상황은 발전소 폐쇄로 일터를 잃을 위기에 처한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의 상황과 겹친다. 공기업임에도 이윤을 위한 비용 절감으로 형성된 다단계 하청 구조는 발전비정규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국가와 자본은 언제든 필요할 때는 노동자를 쥐어짜며 전력을 생산하다가도, 기후위기이니 석탄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며 노동자들의 일자리에는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전노동자들은 기후위기 시대,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고 공공이 책임지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것을 앞장서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발전노동자들이 자본을 위한 전력생산에 희생당해왔다면, 이제는 재생에너지 발전노동자로, 에너지 전환의 주체로 서겠다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삶의 토대를 무너뜨려온 부정의한 에너지 체제를 공공적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여 정의롭게 에너지를 전환하자는 이들의 요구는 고용위기 당사자의 요구를 넘어, 존엄하게 살아갈 사회를 원하는 모든 이들의 요구로 나아가고 있다. 마치 위험하고 불안한 삶을 감내하도록 강요하는 에너지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핵발전소 지역 주민만의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존엄한 세계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요구로 나아간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와 자본의 일방적인 폭력에 맞서 에너지민주주의를  외치며 대안적인 에너지 체제를 주장해온 탈핵운동의 성과와 경험은 기후위기 시대 모두를 위한 공공적, 생태적, 민주적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이 발딛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시대, 탈핵과 함께 정의로운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자

그동안 탈핵운동은 정치 영역 바깥으로 밀려난 민중들의 생명과 안전의 목소리를 엮어내며 에너지 정책이 가진 비민주성과 폭력을 폭로해 왔다. 그 덕분에 우리 사회는 ‘탈핵’이라는 지향을 통해 대안적 에너지 체제를 그려볼 수 있게 됐다. 또한 탈핵 투쟁 속에서 불평등한 에너지 체제에 저항하는 에너지 민주주의의 주체들이 등장했다. 정부의 일방적 핵발전 확대 정책에 맞서 싸우는 것은 핵발전 건설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에너지 정책의 정치적 주체라는 것을 밝히는 싸움이다. 이는 곧 국가와 자본이 에너지 정책을 모두 결정하고 판단하는 지금의 에너지 권력을 바꾸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이다. 에너지 민주주의의 힘을 조직해온 탈핵운동의 역사를 기억하며 탈핵 운동과 함께 기후위기 시대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정의로운 에너지 체제’로 함께 전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