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1년이 되는 날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는 당혹스러웠다. 윤석열 퇴진 광장을 함께 만들고 밝혔던 비상행동(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후신인 기록기념위원회가 원내 5개 정당과 공동주최의 집회를 열었다. 여기에는 현재의 집권여당인 민주당도 포함되었다. 집회를 마친 대오는 국민의힘 당사 앞으로 행진했다. 사회운동이 집권여당과 집회를 열어 야당 당사를 향하는 기이한 풍경. 윤석열 파면 이후의 민주주의가 이런 것일 수는 없다. 12월 10일 집회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스러웠지만 이렇게 비교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비상계엄 후 대통령도 바꾸고 세상도 바꾸자는 문제의식에 공명한 운동들이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세바넷은 작년 6월 해소를 결정하며 비상계엄 1년에 즈음해 공동의 집회를 열기로 했다. 10월부터 준비를 시작해 12월 10일 <가자, 평등으로! 12.10 민중의행진>을 열기로 했다. 12월 3일에는 <가자, 평등으로! 12.10 민중의행진 선포 기자회견 -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평등을 원한다>를 개최하고,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신문 <평등으로> 특별호를 발행했다.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광장으로 나왔던 이들이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투쟁들을 알리고 연대하며 길을 넓히기 위한 활동이었다.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기도 한 12월 10일, 보신각에 많은 이들이 모였다. 공동주최로 함께 한 78개의 단체들뿐만 아니라 개인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왔던 이들도 모여들었다. 광장의 승리를 기억하며 존엄과 평등을 되새기는 참여자들은 계엄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토대를 해체하는 일임을 선언했다. 우리 스스로 더 많은 민주주의와 평등을 향한 시작점이 되기를 약속했다.

박한희(무지개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민생을 살리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길”이고 “우리 모두가 경험한 광장의 약속은 반드시 우리 손으로 이룰 것”임을 선언했다. 강다영(동작구 아트하우스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은 은행과 정부가 전세사기 사태의 공범임을 고발했다. “안전한 집에서 존엄하게 사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더 많은 민주주의’의 내용임을 역설했다. 김영훈(한전 KPS 비정규직지회)은 새 정부가 성과를 자화자찬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대로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농성을 하고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음을 환기했다. 우리가 “비상계엄을 이겨낸 사람들”이며 여전히 세상을 바꿀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외쳤다. 구중서(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는 무안공항 참사를 겪고도, 이미 11개 공항이 만성적자인 와중에 10개의 공항을 더 짓겠다는 정부를 규탄하며 연대를 호소했다.
고유미(노동당), 이상현(녹색당), 문정은(정의당)은 무대에 함께 올라 “세상을 조금씩 왼쪽으로 당겨온 사람들”이 낡은 정치를 끝내고 광장의 사회대개혁 열망을 실현하기 위한 여정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루니(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응원봉만 남고 무지개는 지워져” 있던 대통령 선고 공보물의 충격을 말하며 우리는 “지운다고 사라지지 않”음을 선언했다. 이춘기(경주이주노동자센터)는 뚜안 님의 사망에도 사과 한 마디 없는 정부를 향한 분노와 우리의 연대가 “이주노동자들이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는 평등으로 가는 큰 걸음이 될 것”이라 했다. 박용수(홈리스행동)는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축소”되고 공공장소가 “특정계층만을 위한 공간이 되고 있는” 현실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보신각에서 열린 집회를 마친 후 행진을 시작했다. “부자들의 세상 파면하고 가자 평등으로!” “우리는 평등으로 세상을 바꾼다!” 구호를 힘차게 외치며 기세 있게 행진했다. 집회 홍보물을 보고 먼저 공연을 자처해준 공연팀 호레이(브라질리언 퍼커션 앙상블팀)가 행진을 더욱 기운차게 해주었다. 행진 중간 발언도 있었다. 당근(시민)은 “우리는 우리 서로에게 계속해서 대답을 해주고 있”는데 “정부와 사회는 아직 대답이 없”다며 광장에서 함께 외쳤던 평등과 정의에 대답을 듣자고 했다. 동덕여대 재학생의 자유발언도 있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강행되는 공학전환 상황을 알리며 연대를 호소했다.
행진은 세종호텔 고공농성장 앞까지 이르렀다. 당일로 301일차를 맞는, 세종호텔에서 정리해고 당한 지 4년인 고진수 지부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통령을 두 번이나 끌어내렸지만 “진짜 민주주의가 우리들 곁에 와있습니까” 물으며 정부의 민주주의는 “항상 차별을 받는 현장 앞에서는 다 멈췄”음을 고발했다. “더 넓은 동맹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하나의 큰 구멍을 낼 수 있도록 함께 싸우자”고 제안했다. 행진 참여자들은 연대의 함성으로 응답했다.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은 “체제를 바꾸자는 목소리를 몽상으로 취급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희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서로 연결되자”고 호소했다.
10일 집회는 3일의 당혹스러움이 냉소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각자의 투쟁으로 흩어졌던 이들이 서로 알아볼 수 있었고 평등으로 내는 길이 이어지고 있음을 많은 이들이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날 집회의 부제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노동이 존엄한 나라, 기후정의 당연한 나라, 공공성 든든한 나라, 진보정치 빛나는 나라’였다. 다섯 가지 설명으로 우리가 만들 세상을 모두 보여줄 수 없지만, 하나의 설명으로도 모든 것이 보이게 만드는 일이 운동의 과제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더욱 크게 연결되는 우리의 행동을 통해 가능해질 것이다. 행진은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