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추운 겨울에 나누었던 이야기입니다. 이 광장의 끝이 윤석열 퇴진시키고 새롭게 정치가 개편되어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다는 대화를 누군가와 나누었죠. 그로부터 몇 달을 더 거리에서 윤석열 퇴진을 외쳤고, 끝이 보이지 않던 윤석열 파면이라는 결론을 기어코 만들어냈습니다. 곧바로 시작된 대선 국면의 두 달을 마치며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섰고 지난 거리의 투쟁은 일단락되어 가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상처럼 이 과정의 뒷맛은 영 시원하지 않은 요즘입니다.
저는 사실 윤석열이 계엄을 이야기하기 전까지 퇴진 투쟁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명태균이라는 대통령실을 오가던 브로커 이름이 뉴스에 나오고, 정권의 비리가 보도되어도 그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죠.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질서가 정치적 입장에 앞서서 작동하는 사회이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윤석열은 싫지만, 윤석열만 끌어낸들 그다음 윤석열을 막아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바꿔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계엄은 이미 한 줌밖에 남지 않은 민주주의 질서를 부정하는 선언이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규칙 같은 건 정말 내다 버리고 ‘자신들의 정치’에 유리한 수단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정치를 행하는 대통령을 이대로 놔두면 이 사회도 더는 민주주의 사회로 남아있기에 힘들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바꿔낼 기운보다는 더는 망가뜨려선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아마 다들 비슷한 마음으로 윤석열 퇴진 광장을 지켰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민주주의를 지켜냈지만, 지켜낸 민주주의가 너무 한 줌밖에 남지 않아서일까요. 씁쓸한 뒷맛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부정선거 음모론 영화를 보러 나들이 나온 윤석열, 그 윤석열을 끊어내지 못하는 국민의힘. 윤석열과 결별하는 척하지만 안티-페미니즘을 정치의 자양분 삼는 이준석과 개혁신당. 여기에 아직도 사회적 과제는 갈팡질팡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만 시원하게 응답하는 이재명과 민주당 정부 때문만이 아닙니다.
함께 살자고 고공에 오른 노동자의 싸움에 끝은 보이지 않고, 산재 사망 소식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차별과 폭력을 양분 삼는 세력과 근절하기는커녕 여전히 마이크를 쥐어주고, 쉽게 목소리를 지우려 합니다. 지난 반년 동안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노동이 존엄한 나라, 기후정의 당연한 나라”를 만들자는 구호를 외쳐왔는데요. 계엄-파면-대선으로 이어지는 동안 정작 이 구호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과제들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잘 알아차리기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기 위한 미래는 계속 유예되는 느낌을 떨쳐내기 어려운 마음에 대선이 끝난 지금도 시원하기보다 조금 침울한 마음이 앞섭니다.
그렇다고 끝없이 좌절하고, 침울해할 수만 없는 것이 활동가가 도전하는 숙제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하며 지금을 통과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운동이 어려우면, 우리라도 즐겁게 움직이자’와 같은 소위 ‘캔디’스러운 마음인데요. 답답한 세상만 보고 있기 보다 우리부터 즐겁게 해나갈 수 있는 목표, 과정, 실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노동이 존엄한 나라, 기후정의 당연한 나라”가 옳기 때문만이 아니라 더 매력적인 사회라는 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공상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차원이라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 우리의 이야기에 더 많은 매력을 담아내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르고 또 이어가 보자고 되뇌고 있는데요. 사실 말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동료들과 함께 매력이 넘쳐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토대로 우리의 활동을 채워내고 나면 조금의 침울함 정도는 떨쳐내고 새로운 국면을 다시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금은 우격다짐으로 마음먹어보고 이만 활동가의 편지는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