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인권, 영화를 만나다] 용서받지 못한 자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낯선 곳에 대한 익숙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군대라는 낯선 곳의 생활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군대에 관한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도 군대이야기인 이 영화를 보고 전혀 낯설지 않게 느끼는 것은 주변 예비역들의 무용담을 하도 많이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군대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서일 것이다. 스크린을 경계로 영화 속의 군대와 현실의 사회는 거울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출처] 공식 홈페이지(unforgiven.co.kr)

▲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출처] 공식 홈페이지(unforgiven.co.kr)



한국사회의 모순들을 군대를 다녀오면서 다 이해하게 되었다는 내 또래의 윤종빈 감독은 군대를 거부하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군대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면서 한국사회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섬뜩할 정도로 현실성이 살아있었다. 그 현실성은 군대에 대한 진실을 넘어서 사회의 진실까지도 이야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비극과 나의 비극이 만나고, 주인공들의 아픔과 나의 아픔이 서로 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비극과 아픔은 '섬뜩'한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경우, 영화와 같은 현실은 달콤함이나 경이로움이 아니다. 영화 속의 군대가 현실의 사회로 치환되는 순간, 영화 속의 문제들은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리버리한 후임병 '지훈'을 데리고 누가 더 잘생겼는지 대답하라는 고참들을 짖궃은 장난은 복학생 선배들이 교실 의자에 앉아서 어리숙한 새내기에게 누가 더 잘생겼냐고 물으면서 괴롭히던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 고참이 어리버리한 후임병을 놀리면서 성기를 만지려는 장면을 보면서 '나에게 반말을 해대면서 내 성기를 만지려는 고참 앞에서는, 헌법도 군법도 유엔의 인권선언서도 사문화되고 만다'는 어느 책의 한 구절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 군대에서는 한 개인이 스스로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인격적인 모멸감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출처] 공식 홈페이지(unforgiven.co.kr)

▲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출처] 공식 홈페이지(unforgiven.co.kr)



하지만 영화는 더 어려운 문제를 선뜻 던져준다. 비합리적이고 반인권적인 군대의 질서에 저항하던 승영은 결국에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그 질서로 편입되기를 바란다. 강요되었던 획일적인 질서에 적응하게 된 순간, 그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그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훈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폭력의 피해자가 폭력의 가해자로 변화되는 과정은 폭력적인 구조가 가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보여준다. 이러한 폭력적인 구조 속에서는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로써 저항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이 적극적인 가해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스스로 피해 받지 않기 때문에 저항의 필요성이 없는 사람이며, 가해자들의 폭력을 침묵으로 방관하거나 혹은 동조하는 다른 방식의 가해자일 뿐이다. 영화 속의 승영은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폭력이 악순환되는 군대는 다시 현실의 문제를 머릿속에 떠오르게 한다. 전쟁터와도 같은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구조에 가담하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적극적으로 그 구조를 위해 복무하게 된다. 그리고 그 구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저항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몸담은 세상을 흔드는 귀찮은 존재가 될 뿐이다. 군대는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합법화되어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에 폭력성이 극대화되어 있을 뿐이다. 폭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폭력이 재생산되는 방식에서 결국 군대와 사회의 차이는 없는 것이다.

이 거대한 폭력의 구조 속에서 개인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이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도 감수하고, 때로는 합리화해야 한다. 거대한 구조 앞에서의 무력감.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욕도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거대한 구조에 비겁하게 적응해야하는 자신을 인식하는 것만큼 자신의 신념과 양심과 인격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폭력의 구조를 더 많은 사람들이 거부할수록 희망의 크기는 커진다. 강요된 질서를 거부하는 것은 미약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자 자신을 지키는 최대한의 방어이다. 어떠한 권위와 권력도 한 개인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고, 그 어떤 권위와 권력도 사람들의 협조 없이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임

용석 님은 '전쟁없는 세상'(www.withoutwar.org)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