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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최정민의 인권이야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얽힌 얘기


얼마 전 단체에서 회의를 했다. 주제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을 어떻게 좀 좋게 고쳐볼까 하는 거였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그 말에서 오는 거부감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에도 언어나 단어에 별다른 센스가 없는 우리는 그냥 그렇게 밀고 나갔지만 역시 논의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였다. 운동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이름짓는 일이라고 이것저것 얘기가 나온 끝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어떻겠냐고 의견을 모았다. '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좋고 올바른 가치판단을 하게 만드는 뉘앙스에서 벗어나 60억 개의 서로 다른 양심이 존재하고 자신만의 양심에 '따라' 거부행위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은 'conscientious objection'이란 영어를 풀어서 옮긴 것으로 그 뉘앙스가 일차적 반감을 샀던 모양이었다. 이를테면 "그럼 군대 다녀온 사람은 비양심이란 말이냐?"는 즉각적인 반응이 그것이다. 분명 타당한 지적임에도 나는 오히려 그 지적에 대한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다른 것보다도 군대에 대한 어떤 질문 혹은 문제제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실제로나 온라인 상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거부자=양심적', '군대 가는 사람=비양심'이라는 등식이 '저런 권리도 있었구나'라는 질문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군대 갔다온 억울함에서 나오는 보상심리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군대 다녀온 것이 '억울'한 일이고 '아무도 가고 싶어 간 사람이 없는' 일이고 '돈 있고 빽 있으면 면제받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군대 다녀온 자신은 누구나 가야 하는 곳이므로 아무 생각 없이 선택했거나 아니면 거대한 국가적 권위에 굴복한 것이다. 물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방식을 생각도 못했을 시기에 군대 다녀온 모든 사람들을 비판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뒤돌아 봤을 때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라고 교육하고 가기 싫어도 누구나 가야 한다고 쇠뇌하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자식들은 어떻게 해서든 군대 면제시켰던 국가와 그 높은 양반들의 가당찮은 거짓말에 대해 먼저 화가 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권이 신장되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나는 이들이 또 하나의 당연한 권리를 찾으려는 거부자들 앞에 괜한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나에게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는 군대가 좋아서, 군대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집단이라서 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다녀왔어. 만약 아직 군에 가지 않은 친구나 후배가 군대에 대해 나에게 상담해 오면 나는 꼭 가야 한다고 말할 거야. 하지만 많은 토론이 있은 후 이들이 도저히 군대 가는 것은 자신의 신념에 어긋난다고 하면 나는 인정할 수 있어. 사람마다 생각과 신념은 다 다르고 그에 따른 행동도 다른 것이 당연하잖아?"

(최정민은 평화인권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