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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대북인권결의안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

유엔에서 대북인권결의안이 또다시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유엔 총회 차원이다. 지난 2일 유럽연합은 대북인권결의안을 사상 처음으로 유엔 총회에 상정해, 유엔인권위원회보다 더 넓은 장으로 결의안을 옮겨놓았다. 191개 참가국 중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결의안은 통과된다. 마크 라건 미 국무부 국제기구담당 부차관보는 결의안 통과를 위해 가능한 외교적 수단을 모두 동원할 것이라고 하며 미국은 이를 성사시키기 위한 '여러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고, CNN은 공개처형 동영상을 방송해 결의안 찬성의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다. 유럽연합이 초안을 상정시켰고, 미국과 일본마저 결의안 통과를 위해 잰걸음을 보이고 있어 총회장 주변의 표결 대결은 한층 가속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보수 진영의 움직임도 거친 숨을 몰아쉬기는 마찬가지이다. 한나라당은 유엔 총회에서 결의안이 상정되자 이를 통과시키겠다는 결의안을 내놓고, 본회의에 상정시키기 위해 국회법을 가동하는 등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미 열린우리당에게 자신들이 발의한 '북한인권법'과 '쌀비준안'을 맞바꾸자는 '협상안'을 내놓고 여당 압박에 나서 농민단체의 강한 항의를 받고 있다. 또한 기독북한인연합,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총 26개 보수단체는 지난 10일 광화문에서 한국정부에게 대북결의안에 찬성할 것을 촉구하며 대규모 촛불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이미 인권운동 진영이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대북인권결의안은 '명분'과 '실효성'을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의도로 편집된 조치이다. 인권 평화 단체들은 이번 결의안에 대해서도 성명을 내고 강한 반대의 의지를 보였다. 15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인권 평화단체들은 유엔인권위 차원에서 결의안이 채택된 지 채 1년이 지나지도 않은 현재, "총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할 정도로 북 인권이 악화되었다고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3년간의 결의안이 북 인권의 증진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다만 매년 비슷한 내용의 결의안을 만들어 내는 산파 역할을 했을 따름이다. 결의안에 따라 임명된 특별보고관은 정작 북 내부로 진입도 못한 채, 주변국만 배회할 뿐 결의안을 강하게 반대하는 북 정부를 설득하지도 못하고, 북 인권에 대한 신뢰할 만한 분석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 사이 '북인권' 문제는 이른바 '북핵' 문제의 다음 주자로 국제사회의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북 정부는 유니세프 등 이미 진행되고 있는 유엔 기구와의 협력 관계는 지속시키고 있다. 북은 결의안을 체제를 위협하는 정치적 공세로 파악하고 그에 따른 일체의 협력은 거부하고 있지만 유엔 기구와는 협력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최한 '북인권 국제세미나'에는 국내 연구자들을 비롯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부위원장, 유니세프 아태사무소 소장 등이 참가했다. 세미나는 △북인권에 대한 국제사회 동향 △북 여성의 권리와 국제협력 △북 아동의 권리와 국제협력이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루어졌다. 이날 많은 이들이 발제와 토론에 나섰는데 전체 토론을 관통하는 하나의 쟁점은 "국제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해왔고 앞으로 어떤 과제가 남아있느냐"였다. 일테면 '반성과 과제'를 성찰하는 자리였는데, 결의안과 같은 방식으로는 북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킬 수 없다는 데 대체적으로 같은 의견을 보였다. 특히 지원이나 기술협력으로 북과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해 온 이들은 결의안과 같은 개입에 의문을 표시했다. 북인권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이를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한다는 의지는 강하게 보였지만, 결의안이 '인권 증진을 위한 협력과 그 접촉 지면을 넓히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북인권 문제로 제기되는 여러 사안들이 유독 북만의 문제냐는 반문', '결의안 이전에 존재했던 북-유럽간의 인권대화를 상기할 필요성' '지엽적인 복구보다 전 사회의 시스템적 복구를 우선시 하는 북과 지원기구의 차이점이 시사 하는 바' 등 북과 실질적 교류를 이루고 있는 이들의 현장감 묻어나오는 고민이 터져나왔다. 결의안은 '북인권'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데' 일조했지만 결코 실질적인 차원에서 그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유엔인권위의 결의안에 따라 임명된 비팃 문타본 특별보고관은 이번 세미나 참석 등 지난 2일부터 8일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북 인권에 대한 조사와 함께 NGO들과 면담을 가졌다. 일정을 마친 지난 10일 특별보고관은 북 인권 관련국들에게 △한국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한 지지 △탈북자 입국 및 정착 지원 정책에 대한 계속적인 장려 △북한 내 식량지원 투명성 보장과 인권 존중 및 개선 촉구 등의 '인권 6개안'을 내놓았다. 핵심 사항에 대한 특별보고관의 권고는 몇 차례의 유엔 보고서를 통해서 이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특별보고관의 이같은 분석과 권고에 대해 국내 인권운동 진영은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신뢰할만한 분석과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별보고관이 북 내부로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확인에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며, 한반도의 역사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포괄적 입장에서 북인권 문제를 분석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 그렇다. 평화적 생존권, 식량권 등을 분석하는 관점이 특히 그러한대 내부 모순 뿐 아니라 외부적 요인도 강하게 작용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포괄적 접근은 필수 불가결하다. 특별보고관은 이 점을 '한반도 특수성'으로 이해하고 보편성을 적용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양자 택일이 아니라 인권 문제 발생의 근원적인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한 해법도 그렇다. 북일정상회담 이후 해빙 무드가 어떻게 악화된 것인지 그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과정이지만 그 점은 생략되어 있고 북 정부에게만 투명하고 책임감 있고, 이해 가능한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환자에게 정작 필요한 처방은 하지 못하고, 불신과 적대감만 심어주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의사, 그것이 바로 유엔 인권 무대에서 잇달아 만들어지고 있는 '대북인권결의안'이다. 안타까운 것은 결의안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갈수록 명백해지고 있음에도 결의안을 '결의'하는 목소리들은 드세게 높아만 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