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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문화다양성 협약이 남긴 과제

전세계 정치경제의 양상이 자유무역체제로 수렴되는 신자유주의 질서 하에서, 문화다양성 증진을 목적으로 자유무역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국제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지난 20일 유네스코는 '문화콘텐츠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를 위한 협약'을 채택하여, WTO·FTA를 필두로 양자간·다자간 무역협정으로 국제문화관계를 규율하려는 신자유주의의 야심에 제동을 걸었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당사국이 문화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각국 정부가 이미 가입한 국제 협정이나 새롭게 가입할 협약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을 염두에 둘 것을 명시하고 있다. 더불어 국제문화관계를 관장할 체계적인 기구나 규범의 부재로 인하여 그동안 WTO에서 다루어져왔던 문화분야의 각국간 분쟁을 당사국 사이의 협상이나 중재를 통하여 해결하도록 명문화했다.

문화는 사회구성원 사이의 소통을 꾀하며 자연스럽게 흡입되는 사회적 공기로 기능하기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파급력을 지닌다. 또한 사회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자본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하여 다양성이 보장된 문화권을 획득하려는 노력은 한 사회의 정치경제적 성숙도와 무관하게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미국을 위시한 초국적 투기 자본의 유입으로 방송을 포함한 전세계 다양한 문화가 잠식당하고 의료·교육 등 사회공공적 영역을 개방하라는 통상압력이 거세지는 실정에서, 국제사회가 문화의 본래적 가치를 환기시키는 중지를 모아냈다는 점에 협약의 의의가 있다.

그렇지만 문화권의 쟁취는 국경을 기준점으로 삼은 '자주권'의 확보로 충분치 못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협약을 스크린쿼터 투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 환영하지만, 투자자본의 본격적 유입으로 인한 영화산업의 비약적 규모 확대와 동시에 태동한 이른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문화권 쟁취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작동하는 산업적 측면의 '문화'를 지양하고, 문화공공성의 기반을 확대시키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문화권이 인권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모든 사회구성원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문화적 기반시설에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주노동자·아동·성적소수자 등의 문화적 정체성이 문화권에 기반해 향유될 수 있어야 한다.

문화다양성 협약이 국제인권규범으로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서는 30개국 이상의 국가가 비준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정부는 문화다양성 협약을 시급히 국회에서 비준해야 한다. 한국정부는 문화다양성 협약 예비초안 채택 시 찬성이 아니라 '반대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취했고, 협약 채택이후에도 문화다양성 협약이 자유무역협정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왜곡된 해석을 표명하며 협약의 의의를 손상시키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머리를 조아리는 저열한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나아가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문화의 발전을 위한 정책적 개입을 게을리 하지 않는 동시에, 문화적 접근권의 계층간 해소와 다양한 정체성이 반영된 문화의 생성을 독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