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논평] 학교급식조례 짓밟은 대법원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순응, 깊은 수렁에서 헤쳐 나오기 위해 회생 노력을 꾀하는 농민들의 거친 손마디를 외면하고 어린이·청소년들의 건강권을 해치는 사법부의 판결이 등장해 인권 유린의 첨병인 신자유주의의 위력을 새삼 상기시키고 있다.

지난 9일 대법원은 전북 교육청이 전북 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우리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사용토록 한 전북 학교급식 조례안이 WTO의 부속 협정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국회 비준을 거쳐 공포·시행된 조약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도록 하는 헌법 6조 1항을 적용한 것. 대법원은 전북 학교급식 조례안이 외국농산물을 국내 농산물보다 불리하게 대우하여, 내국민대우원칙을 규정한 GATT 제3조 1항, 4항에 위반했으므로 효력을 상실케 되었다고 주장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인권의 마지막 보루라고 자칭하는 사법부가 국민의 건강권 및 식량권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미 행정부와 국회는 노동기본권, 사회복지 등 경제·사회적 권리들을 후퇴시키는 일련의 정책과 입법 활동을 펴왔다는 점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또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 건강권 등 사회적 권리를 크게 침해하는 다자간(양자간) 무역협정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을 해왔다. 이에 더해 사법부까지 미국 등 강자의 무역질서를 반영하는 흐름에 부화뇌동해 농민의 생존권과 어린이·청소년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판결은 국가에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자유무역협정이 국민들의 일상생활에는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교육의 공공성은 안중에도 없는 정부는 애초부터 학교급식에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 민간업자에게 위탁했다. 이윤에 눈 먼 업자들은 경쟁적으로 값싼 국외 농산물을 사용해 학교를 질 낮은 식품의 집결지로 전락시켰다. '공정한 무역'이라는 가면을 쓴 자유무역질서는 국내 농산물을 우선 사용해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려는 주민들의 소박한 바람마저 꺾어버렸다.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 공세가 식량권을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마련된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의 성과인 조례제정운동의 불씨는 되살려져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자생적 노력을 꺾으려는 사법부의 경거망동이 다른 급식조례운동에 악영향을 끼쳐서도 안 된다. 학교급식조례 제정운동은 국적불문의 비위생적인 먹거리에 내몰려 있는 학생들의 건강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농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한다. 국민의 인권보장과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 한 대법원의 판결은 결국 대다수 국민의 불복종으로 효력을 상실시켜야 한다. 이와 더불어 학교 급식의 직영 운영과 무상급식을 달성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조직적 행동 또한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