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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박석진의 인권이야기] 집회에서 줄을 맞추는 것이 두려운 이유

"자, 한 번만 더 일어나서 오와 열을 맞춥니다. 앞사람 어깨에 손 올리세요. 앞에서 다섯 번째 줄까지는 전부 이 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앉았다 일어났다,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렸다, 발을 왼쪽으로 살짝 옮겼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살짝……. 어쨌든 우리는 '완벽한' 대오를 유지하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고 있었다. 나 혼자 줄이 살짝이라도 틀리면 모든 사람들이 또다시 일어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해야 할까봐 온 정신을 집중해서 앞과 옆을 흘끗거리며 줄을 맞추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 순간 땀방울인지 빗방울인지 얼굴을 구르며 조르륵 흘러내린다.

"근데 '오와 열'이 뭐예요?"

옆에 있던 사람의 질문에 "아, 그것도 몰라요?"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다 꿀꺽 집어삼켰다. "'오'는 앞줄이고 '열'은 옆줄이에요…아니, 그 반대인가?" 군대에서 배운 것 같기는 한데 그마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해 머리만 긁적긁적했다. 아무렴 어때, 여긴 군대도 아닌데, 라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이게 뭐야? 우리가 무슨 유격훈련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 유격훈련이 아니었다. 물론 예비군 훈련도 아니었다. 인간답게 살 권리, 인간답게 노동할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싸워서라도 되찾기 위해 모두가 자발적으로 모인 자리였다. 그런데 '대오'를 '지도'하는 그 사람은 마치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교관'과도 같았다.

"여러분, 오와 열을 맞추세요.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3열로 줄 맞춰 서보세요, 아니, 5열로 맞춰 다시 줄을 섭니다."

시민들에게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또는 '적들'에게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끊임없이 줄을 맞춰 설 것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그 교관은, 아니 그 사회자는 아주 훌륭하게 그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나는 '주체적인 의지를 가진 한 명의 자발적 개인'으로서 그 집회에 참가했지만 그곳에서는 마치 하나의 부속품이 된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나의 역할은 시민들에게 보여지는 질서정연한 대오의 한 부분이었고 적들에게 위협을 주는 일사불란한 대오의 한 귀퉁이였다. 전체의 목적에 모두가 복무하는, 혹은 전체는 있으나 개별은 존재할 수 없는. 그 순간 파란 작업복에 '오와 열을 딱딱 맞춰 앉아' 전체가 하나인 듯 리듬에 맞춰 허공으로 팔을 뻗는 거대한 군중, 노동자 집회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느 대공장 단일 (남성) 노조의.

비단 이날의 집회에서만이 아니다. 어느 집회에서든지 종종 듣게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줄을 맞춰 앉읍시다"이다. 지난해 '탄핵반대' 집회에서, 그리고 파병반대 집회에서도 '주최측'은 참가자들에게 '줄을 맞춰 앉을 것'을 요구했다. 그때는 아예 바닥에 선을 그어 놓았다. 이 선을 넘지 말 것. 줄을 맞추는 문제뿐만이 아니다. 이와 같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집회에서조차 통제를 당한다. 또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통제를 한다.

집회는 어떠한 목적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게다가 집회가 또 하나의 작은 '행정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집회는 권리를 빼앗긴 민중들의 정치적 학교가 되어야 한다. 이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구분되지 않는다. 특히 집회 주최측은 그 누구도 가르치거나 통제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집회의 모든 참가자들이 교사이자 학생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적인 통제와 학습에 길들어있는 민중들은 집회를 통해서 싸워서 쟁취해야 할 권리의 목록들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질서와 민주적인 정치를 배운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누구도 이러한 민중들의 학교를 훼손할 수는 없다.

더 이상 '줄을 맞출 것'을 강요하지 말라. 더 이상 통제하려고 하지 말라. 자발적인 주체들이 모여, 서로의 다양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소통하고,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한없이 밝힘으로써, 서로가 서로의 뜨거운 연대의 손을 맞잡을 수 있는, 또 그러한 것을 배울 수 있는 민중들의 정치적 학교로서, 자율적인 집회를 꿈꾸어본다.
덧붙임

박석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