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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원폭피해자들의 살아있는 목소리 시작되다

8월 6일, 60년 전 이날은 "무언가 번쩍한 순간 주위가 불바다가 되더니 이내 온천지가 깜깜해진" 날이다. 원자폭탄.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60년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은 '원폭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원폭 피해자들의 증언이 시작되다.

▲ 원폭 피해자들의 증언이 시작되다.



'묻지마라 갑자생'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곽귀훈 회장은 '묻지마라 갑자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일본으로 강제징병되었던 1기가 갑자년 출생이라 당시 '묻지마라 갑자생'이라는 유행어가 돌았다는 것.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정신대로 멀리 끌려갈까봐 부모님이 결혼시켰"고 많은 한국인들이 그랬듯 판자촌에서 살았던 김일조 씨에게도 피폭 이전의 아픔이 배어있다. 김봉대 씨는 합천에 원폭피해자가 많은 이유를 "워낙 오지라 전답이 없는 데다가 그나마 일본이 빼앗아간 터라 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녀들은 '군속 일'을 하거나 '탄광에서 노역'하거나 '목욕탕 불 때는 일'을 하면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중 '불바다'에 휩쓸렸던 것.


원폭 피해라는 사실 알기도 힘들어

당시 일본에 있던 원폭피해자들은 '6개월 지나 낳은 딸 아이가 태어나서 얼마 뒤에 죽'었어도 그것이 원폭 피해일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2세들 역시 '어릴 때부터 다리에 힘이 없어 잘 넘어지고 빈혈이 심'했거나 '30년 동안 폐렴으로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그것이 원폭 피해의 영향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없었다. 정보를 구할 수도 없었고 한국이나 일본 정부 모두 '나 몰라라'하는 탓에 생활·의료 지원은 언감생심이었다. 심진태 씨는 넷째딸이 앓는 동안 서울의 큰 병원을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돈이 무서워서" 병원을 갈 엄두를 못 냈다. 그의 딸은 "먹는 건 잘 먹는데 바짝바짝 마르더니 젖을 물다가 조용히 죽"었다.

원폭 피해자와 그 자녀들을 담은 사진전. '깜깜해진 온천지'가 이어져온 60년의 세월은 이제 끝나야 한다.

▲ 원폭 피해자와 그 자녀들을 담은 사진전. '깜깜해진 온천지'가 이어져온 60년의 세월은 이제 끝나야 한다.



목소리가 나오기까지

조금씩 원폭피해를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동안 피해사실을 숨기고 살았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고 차별, 한국에서는 원폭피해자라고 차별'하는 세상이었던 것.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 진단을 받은 정숙희 씨는 "처음 의사가 유전적 요인을 물었을 때는 미처 생각을 못해 알리지 않았"지만 "남동생도 다운증후군으로 고생하고 딸도 내 어릴 때 증상과 비슷"한 사실을 인식하면서 고통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한국원폭2세환우회의 회장이었던 고 김형율 씨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도 "나는 원폭피해자 2세임을 완강하게 부인했고 만나지 않았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이제 "전 김형율 회장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원폭2세환우회의 회장을 맡아 활동을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최근 심장이 안 좋아 약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다"는 김일조 씨는 "엊저녁에도 한 사람이 죽었다"며 더 늦기 전에 원폭피해 진상규명과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천의 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일하는 심진태 씨는 "4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음식을 나르다가 쏟는 경우가 다반사고 80명 수용인원에 대기인원만 60명이라 신청해놓고 기다리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며 지원이 부족함을 꼬집었다.

이날 오전 조승수 의원이 대표발의한 '원자폭탄 피해자 진상규명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이들이 거는 기대는 크다. 법안은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 위원회 설치 △피해자와 직계존속에 대한 의료지원 및 생활지원 △진상조사 및 기념사업을 골자로 한다.


"특별법 제정운동 등 끝까지 싸울 것"

이날 증언대회에는 고 김형율 씨의 아버지인 김봉대 씨가 증언자로 나섰다. 그는 피폭자는 아니지만 "너무나 소중한 아이"였던 형율 씨를 기억하며 "이 땅의 모든 2세환우의 아버지"가 되겠다는 나직한 다짐을 밝혔다.

'한달을 살아도 고통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이들에게 버섯구름은 사라졌지만 원폭투하로 '깜깜해진 온천지'가 온전히 밝아진 것은 아니다. 특별법 제정은 이날 증언대회에서 살아있는 목소리로 서술되기 시작한 민중의 역사를 세우고 피해자들의 고통과 기억을 나누는 첫걸음일 것이다.

[알림] 원폭피해자의 아픔과 함께하는 시민문화제

□ 때 : 2005년 8월 6일(토) 오후 7시 (사전행사 5시)
□ 곳 :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