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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원폭 피해자 특별법 입법청원

정부의 무관심에 참다못한 원폭 피해자들이 특별법 입법을 요구하고 나섰다.

12일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원폭2세환우문제해결을위한공대위 등 원폭 피해자들과 인권사회단체들은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의 강제연행에 의한 인간수탈로 삶의 터전을 상실하고 뜻하지 않은 원폭피폭의 상흔을 입은 것도 모자라 일본정부와 한국정부로부터 철저하게 방치된 채 살아온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국가차원의 진상규명과 지원 대책이 전무한 가운데 지금도 '대를 이어' 고통을 강요받고 있다"며 진상규명과 지원대책 마련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12일 열린 기자회견

▲ 12일 열린 기자회견



그동안 원폭2세들은 피폭과의 관련성이 규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 2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국가기관으로서는 최초로 원폭 1세·2세에 대해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폭 2세들은 같은 또래의 일반인에 비해 빈혈, 심근경색·협심증 등의 만성질환과 우울증, 정신분열, 각종 암 등의 질병에 걸린 수가 최고 89배나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원폭 2세 사망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10세 미만에 사망했고, 이 중 사망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60.9%에 달해 원폭 피해가 2세 이후에까지 대물림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 바 있다.

하지만 원폭 피해자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피폭과 원폭2세의 질병과의 관계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현재로서는 원폭2세에 대한 지원사업을 실시하기 힘들다"며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서 관계가 규명된다면 한국에서도 원폭2세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인권사회단체들은 "원폭피해자들은 고령이며, 갖은 병고와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등 원폭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가 대를 이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정부는 문제의 심각성과 시급성 차원에서 원폭피해자에 대한 국가차원의 진상규명과 지원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김형률 회장

▲ 한국원폭2세환우회 김형률 회장



한편 지난 1월 20일 30년만에 공개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의 전신)의 문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 구호 1974>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이미 1974년 원폭피해자의 병에 유전성이 있음을 전제하고 원폭 1세와 2세 모두를 포함하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서는 "원폭피해자의 병상은 특수하여 외상뿐만 아니라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여러 가지 병발증을 포함하고 있어 특수치료가 필요"하며 "이 병은 유전성이 있어 피폭자들의 후손에 대한 건강관리도 크게 우려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당시 보건사회부는 "이들 피폭자(1세,2세)에 대한 치료와 재활대책이 시급하나 일본에 파견 치료함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어 국내에 이들을(원폭피해자1세, 2세) 위한 현대적 치료센타 및 재활원 설립이 요망된다"며 400병상 규모의 국립원폭전문병원 설립을 계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후 병원설립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인권사회단체들은 "한국정부가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실태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제반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원폭피해자를 상대로 한 국가 권력의 횡포일뿐더러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정부가 직접 나서 이들의 인권보장과 명예회복을 반드시 실천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한국원폭2세환우회에서 입법청원한 '한국원폭피해자와 원폭2세환우의 진상규명 및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은 △피해자 건강권·생존권 보장의 명시 △정부차원의 실태조사 △정기적인 건강검진 및 치료를 위한 의료원호와 생계지원 △'선지원 후규명'으로 생존권과 생명권의 보장 △피해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국립원폭전문병원 설립 △한국원폭피해자 인권과 평화를 위한 박물관 설립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번 청원을 소개한 조승수 의원(민주노동당)실 이강준 보좌관은 "피폭 60년인 올해까지도 정부차원의 제대로 된 진상조사조차 없었던 것은 명백한 정부 책임"이라며 "피해자들의 상황을 감안해서 '선지원 후규명'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작정"이라고 밝혔다. 또 특별법 입법 일정에 대해 "공대위와 협의해서 법안 초안을 만든 후 5월 중순 경 입법공청회를 거쳐 6월 임시국회에서 발의하고, 발의와 동시에 원폭 피해자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국회 차원의 대정부결의안 채택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달 중 원폭 피해자 문제에 공감하는 의원모임이 발족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