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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물과 에너지는 인권이다

물·에너지 사유화 반대 아시아 노동자·사회운동 선언 발표

'물과 에너지는 인권'이라는 기치로 아시아지역의 노동·사회운동이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된 '물·에너지 사유화 반대 국제 노동조합 대회'는 '노동과 환경의 연대를 통한 에너지체제전환 국제심포지엄(아래 심포지엄)', '물사유화 저지 워크숍' 등 고민을 심화하고 연대를 모색하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들로 구성되었으며 대회 마지막 날인 24일 '물·에너지 사유화 반대 아시아 노동자·사회운동 선언(아래 선언)'을 발표했다.

24일 열린 기자회견

▲ 24일 열린 기자회견



"환경파괴 인권박탈 사유화를 중단하라"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네팔, 한국의 노동자와 활동가들은 물과 에너지에 대한 "기본적 인권이 국제금융기구를 등에 업은 자본의 이윤놀음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지구적 저항을 조직하고 우리가 직접 대안을 만들어야 함을 공유"했다고 선언했다.

이날 선언 발표에 참가한 인도네시아 교통운송노조연맹 앤디 시나가 사무총장은 쓰나미가 동남아시아를 덮친 틈을 타 "상수도, 기간시설 재건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기업들이 들어오고 있으나 '지원'의 실체는 공공서비스의 사유화일 뿐, 이것이야말로 또다른 재앙"이라고 단언했다.

사유화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이 거센 것은 사유화의 결과가 어떤지 분명하기 때문이다. 심포지엄에서 에너지산업의 사유화에 대한 발제를 맡은 쉐런 비더 교수(호주 울런공 대학 과학기술사학과)는 인도의 예를 들었다. 인도는 국제금융기구들로부터 전력산업을 사유화하라는 압력을 받고 1992년 엔론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봄베이시에 다볼발전소를 건설한 엔론사는 지나친 전력요금 인상을 요구하였고 결국 항의를 이기지 못해 2001년 전력사업에서 물러섰다.

영국은 1989년 물 사유화를 시작한 후로 1995년까지 수도요금이 109% 상승했다. 같은 기간, 기업 이윤은 605%나 상승했다. 이것이 사유화의 노골적인 모습이다. 쉐런 비더는, 사유화가 추진되면 소비자들은 "요금이 낮아지고 서비스가 좋으질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지만 결국 "수혜자라기보다는 피해자"가 될 뿐이라며 사유화의 기만적인 모습을 들춰냈다.

한국정부 역시 IMF를 거치며 전력산업구조개편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시작된 다양한 대응의 모색과 2002년 철도·가스·발전 공동파업은 사유화의 흐름을 주춤거리게 했지만 노무현 정권에서도 민영화 논의가 재검토되고 있다. 물과 관련해서는, 이미 2001년에 하수종말처리시설 중 82개소가 민간위탁으로 운영되었으며 현재 상수도사업소 역시 마산, 서울, 전주를 시작으로 민간위탁이 추진되고 있다.

공무원노동조합 민영화저지특위 고성배 위원장은 "아시아지역의 활동가들은 한국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사유화를 추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차관을 상환하기 위한 수입원을 확보하라는 국제금융기구의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자국의 물에 대한 권리를 판매해야만 했던 아시아 많은 나라들의 눈으로는, 불을 보듯 뻔한 결과를 향해 '자발적으로' 달려가는 한국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물과 에너지는 인권이다

물과 에너지 사유화는 이처럼 경제적 접근에서의 차별을 유발해 취약한 집단의 인권을 침해한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물에 대한 권리'가 중요한 인권임을 강조하며 일반논평 15를 통해 물에 대한 권리의 실현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밝히고 인권침해를 예시했다.

물에 대한 권리란, 모든 사람이 안전하며 접근, 수용, 지불이 가능하고 충분한 물을 사용할 권리다. 사회권위원회는 당사국이 물에 대한 권리를 존중, 보호, 실현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한다. 특히, 기업이나 민간위탁업체를 포함하여 제3자가 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는데 제3자가 물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부정하거나 물의 원천을 오염시키고 불공평하게 추출하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당사국은 물에 대한 권리의 실현을 위해 국가 물 전략과 행동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형평성 있는 분배를 위해 참여적이고 투명한 과정에 근거하여 전략과 계획을 만드는 것은 최소핵심의무이기도 하다. 이때 당사국은 최대한의 가용자원을 모두 활용할 의무가 있다. 일반논평은 지불할 수 없을 정도로 물값이 인상되거나 정부가 물 공급자를 효과적으로 조정하지 못하는 것 역시 인권침해라고 밝혀, 물에 대한 권리가 추상적인 선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권실현을 위한 공공성 요구

물과 에너지에 대한 권리의 실현을 위한 모색은 공공성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심포지엄에서 에너지대안센터 이필렬 대표는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본연의 목표를 상기하면 공공성에서 만나게 되고 이때 "공공성의 핵심은 다음, 그다음 세대까지도 고려하는 지속가능성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권위원회의 일반논평 역시 물에 대한 권리는 현재와 미래 세대 모두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권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자연스럽게, 지속가능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사유화에 반대하며 지속불가능한 에너지 수급체제의 기초인 원자력과 화석연료의존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합의가 얻어지는 것"이라며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공동과제를 제기했다.


전지구적인 사유화에 맞선 '투쟁의 세계화'

심포지엄에서 태국 전력노조 수라삭 사에하오 사무부총장은 에너지와 물 사유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만들어가기 위해 '기간산업수호네트워크'를 결성한 태국의 투쟁을 소개했다. 태국의 노동자들은 정부의 사유화 추진에 대해 "공청회가 아니라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그는 "우루과이 노동자들이 헌법에 물과 에너지를 반드시 공적 소유로 해야 한다고 명기시킨 성공사례를 기억하며 사유화에 항의하는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선언 발표에 앞서 공공연맹 이성우 사무처장은 "지금까지 개발의 역사는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오히려 사유화했다"고 지적했다. 수라삭 사에하오 사무부총장은 사유화에 반대하는 투쟁은 "모두를 위한 정의"를 만들어가는 길이라며 노동자·사회운동의 연대를 강조했다.

이날 선언발표에 참가한 이들은 "물과 에너지의 사유화가 전 지구적인 문제임을 인식하였으며 국제연대를 강화하고 공동행동을 조직할 것을 결의"하고 "친환경적이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 공공서비스가 보편적 인권으로서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동자 민중이 주인이 되는, 그리고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안적 물·에너지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전진할 것"을 선언했다. 참가자들은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단결하면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영어 구호를 외치며 국제연대의 결의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