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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_세상3] 장애인의 박탈된 자유, 자립생활을 시작으로

장애인의 정치적 권리 회복을 위해 싸우는 박정혁 씨를 만나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인권은 과거와 비교해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한국의 장애인권운동이 차별에 맞서 싸우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된 싸움을 해온 성과이다. 이제 적어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대놓고 옹호하거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에 반대할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시정과 사회복지 확대의 측면에서, 여러 발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시혜와 동정’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장애인은 ‘불쌍한’ 이들이기에 도와줘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 더 나아가 예전과 비교하여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니 이젠 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입장마저 존재한다. 이런 입장들은 지금 당장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장애 인권 운동의 요구에 ‘성급하다’는 식의 태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설 장애인들의 자립 지원 요구를 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어제까지 농성을 하던, 장애인들을 보는 서울시의 태도가 그렇다.

이러한 차별적 태도를 넘어서 진정한 차별 철폐와 장애인 인권의 ‘실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장애인에게서 박탈된 ‘자유’의 문제와 시민 정치적 권리에 대해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인 ‘장애인 배움터 너른 마당’에서 활동하고 계신 박정혁 씨를 인터뷰하였다.

탈시설 장애인들의 자립 생활 지원 요구

“기본적으로 중증 장애인들이 자립을 하려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인프라가 마련되어야 시설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우선 시설에서 나왔을 때 당장 주거의 문제부터 해결되어야 하는데요, 탈시설 장애인이 주거를 마련할 때까지 임시로 머무를 수 있는 장애인 자립주택이 필요해요. 서울시가 이것을 의지를 갖고 마련하라는 게 요구의 하나예요.”

“또한 중증 장애인이 일상 생활을 하려면 활동 보조인이 필요한데요, 현재는 한 달에 180시간이라 하루 6시간 이상은 쓰지 못해요. 자립을 해서 살려면 턱없이 부족하지요. 이것을 현실성 있게 늘려달라는 거죠.”

시설로부터 나와 자립하고자 하는 것은 이들만의 요구는 아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서울시가 관리 감독하는 38개 장애인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57%가 시설에서 나오고 싶어 했으며, 주거 및 활동 보조 지원이 이뤄진다면 70%가 나오고 싶어 했다.

그럼 이들은 왜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려 하는 것일까. 지난 몇 년간 몇몇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벌어진 시설 비리와 인권침해들이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되었는데, 이런 문제들이 1차적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관리 받는 삶’이 아니라 ‘자유’를 원한다

“제가 성람재단이 운영하는 은혜장애인 요양원에 7년을 살았어요. 요양원이 강원도 철원에 있는데 거기는 가을만 되도 되게 추워지는 동네예요. 그런데 국가에서 예산을 안 준다며 겨울이 되어도 난방을 잘 안 해요. 또 당시 규정 상 보모 1명이 4~5명을 돌봐야 하는데 실제론 12명씩 돌보곤 했죠. 보모도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지적 장애인에게 그걸 푸는 경우가 있죠. 1급 지적 장애인이 대소변을 못 가린다고 보모들이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언론에도 나오고 했는데, 이젠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인권 침해나 시설 비리만 없어지면 시설 장애인의 인권은 보장되는 것일까. 설령 눈에 잘 띄는 명백한 인권침해들이 고쳐지고, 비참한 생활 수준이 개선된다 해도, 시설은 장애인이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엔 한계가 분명한 건 아닐까.

“군대 가면 단체생활 하잖아요. 개인은 없어요. 시설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 대부분 장애인 시설들이 사실 인간창고예요. 장애인들을 그냥 쌓아놓고 보관만 한다는 거죠. 거의 먹고 자고 하는 것 외에 문화적이거나 교육적인 욕구를 채울만한 프로그램들이 없거나, 있다 해도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경우가 많아요.”

“장애인들 중에는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시설 내에서 뭔가 역할을 맡아서 하고 싶은 사람도 있어요. 다들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시설은 이런 개별적인 욕구들이 싸그리 무시하고 획일화되어 있어요. 자기 일상이 관리 받는 거예요. 자유롭지 못한거죠.”

이건 시설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라 해도, 당사자에 대해 가족이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하고 방안에 ‘모셔다 놓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이런 경우도 있어요. 장애인 자녀가 뭔가에 재능을 보이면, 부모가 거기에 집착하느라 당사자의 다양한 욕구가 무시되기도 해요. 영화 <말아톤> 보셨어요? 그게 그런 거잖아요. 부모는 거기에만 매달리는 거죠. 그거 하나만 잘하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본인은 그게 하기 싫거나 다른 것들을 해보고 싶기도 할 텐데, 자꾸 그것만 하도록 강요당하는 거예요.”

앞서 서울시에서 조사한 장애인들의 70%가 시설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건, 이렇게 자유가 박탈된 채 ‘관리 받는 삶’이 숨 막히기 때문이 아닐까. 장애인도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지역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며 자유롭게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자립을 해보면 되게 귀찮은 것도 많고 힘들어요. 어떨 땐 시설에 있으면 편할 텐데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저는 꿈이 있고, 자립을 통해 꿈을 펼칠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해요. 여러 제약조건이 있겠지만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부분도 있구요. 시설에서는 아예 이런 시도조차 못하잖아요. 시설에는 몸만 맡기는 게 아니라 정신도 맡기는 결과를 낳는 것 같아요.”

장애인 자립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절실해

그러나 장애인이 자립을 하려면 사회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시설에서 나오고 싶지만 살아갈 것이 막막하기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주거의 문제가 제일 중요해요. 비장애인들도 집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장애인들은 돈도 없고 더 힘들어요. 저는 그래도 2003년에 시설에서 나왔는데, 마침 시기적으로 장애인 자립 생활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 활발하게 도입되던 시기여서 이런 저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결혼도 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요건에도 해당되었고, 은행에서도 한 번은 퇴짜를 받았지만 두 번째 은행에서 거의 떼쓰다시피 해서 융자도 받았어요. 그래서 월세를 구했는데, 지금 또 구하러 다녀야 되요. 집주인이 다른 생각이 있는지 좀 나가달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집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거예요.”

“그리고 제가 국가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는 수급자인데, 2인 가구에 장애수당 꼴랑 9만원 포함해서 96만 원 정도 받아요. 이게 비장애인들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수준인데, 거기다가 구직활동을 하면 그나마도 못 받아요. 취직해서 돈을 벌게 되면 그만큼을 제하고 받는 거죠. 이러면 누가 일을 하고 싶겠어요. 하지만 장애인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이런 문제에 발이 묶여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것도 자유가 박탈되는 거라 생각해요.

“제 생각에 장애인이 자유롭게 살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국가가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못 살면 죽으라고 하는 게 국가는 아니잖아요.”

장애인의 정치적 권리, 사회 참여가 필요

요즘 이런 국가 책임론에 대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당장 이것을 실현하라는 장애인들의 요구에 대해, 예산이 부족하다거나 시기상조라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하며 회피한다.

“하지만 4대 강 정비 사업을 하는데 20조를 투입한다는데 그 돈은 어디서 난 돈인가요. 장애인, 비정규직 등 여러 문제가 많은데 이런 문제는 왜 다 제끼고 거기다 투입하냐는 거죠. 서울시도 노들섬 개발한다고 거기에 돈을 엄청 퍼붓는데, 그 돈이면 활동 보조 늘리고 자립 주택 충분히 지을 수 있어요.”

결국 공적 자원을 어디에 투입할 것인가를 누가 결정하느냐가 중요해진다. 공적 의사 결정 과정에 장애인이 참여할 수 없기에, 늘 “남는” 자원이 배당되면서 지금은 그것으로 만족하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노들섬 개발과 장애인의 자립 중 어느 것이 더 절실한 것일까. 장애인의 정치적 권리가 중요해지는 지점이다.

“석암재단과의 싸움도 어쩌면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일 수 있어요. 석암재단에서 시설을 더 깊은 산골에 지어 넣고 옮기겠다고 했던 데 불씨가 되었어요. 원래는 시설에 살면서도 전동 휠체어랑 저상버스 타고 서울 시내에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이들이 있었는데, 산골로 들어가면 그게 불가능해지잖아요. 그런데 이걸 일방적으로 결정하려 한 거예요. 재단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게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시설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절실한 문제였죠.”

장애인의 정치적 권리가 신장되기 위해서는 사회 참여도 필수적이다.

“사실 장애인들이 각계 분야에 진출해서 이런 저런 역할들을 수행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배워야죠. 그런데 성인 장애인들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길이 없어요. 학원에라도 다니려면 돈이 있어야 되는데 사회적 지원이 안 되니깐 포기하는 거죠.”

“2006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어요. 이런 교육이나 활동보조의 문제를 사회 저변에 알리는 목적으로요. 그리고 선거가 끝난 다음에 출마한 당과 같이 뜻있는 일을 해보자 해서 시작한 게 장애인 야학이예요. 장애인 교육에 관한 공약을 실천하고자 한 거죠. 그런데 제가 아는 것이 많이 없다보니 발전이 느려요.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나왔는데, 그래서 뭔가 미묘하게 부딪히는 게 많아요. 사람과의 대화에서 기술도 많이 부족하고, 사무적인 처리능력도 많이 딸리고.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학교 교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장애인 배움터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려 해요.”

자립을 통해 지금은 자신의 꿈을 추구하고 있다는 박정혁 씨. 사회 속에서 장애인 교육이라는 자기 역할을 찾아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단지 시설 내 비리와 인권침해가 사라지고, 음식이나 난방이 좀 더 좋아지는 수준을 넘어서, 중증 장애인도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또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사회 참여가 이루어질 때, 진정한 차별의 철폐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박정혁 씨는 중증 장애인으로서 2003년에 시설에서 나와 자립 생활을 시작하였다. 현재는 장애인 야학인 ‘장애인 배움터 너른 마당’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장애 인권과 관련하여 활발하게 언론 기고를 하는 등 장애인 인권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덧붙임

유성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