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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대안: 국가 중심의 발전?

<기고> 5회 세계사회포럼 현장(2)

'민주주의'를 앞세워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여전히 미국이다. 70∼80년대 '미국의 안뜰'이라 불린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이 '더러운 전쟁'에 뒷돈을 대거나 직접 군사행동을 했을 때 내건 명분이 '반공'이었다면 현재는 '자유무역'이다.


지구를 점령한 신자유주의

지난달 27일 세계사회포럼에서 '남반구포커스'(Focus on the Global South)가 주최한 '이것이 민주주의인가'라는 주제의 워크숍에서 니카라과의 한 활동가는 "80년대 미국의 콘트라 반군 지원으로 피로 얼룩졌던 니카라과는 이제 미국에 의해 부과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다시 피로 물들고 있다"고 증언했다. 9.11 이전에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외국투자자들이 떠난다고 협박하더니, 9.11이후에는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 그는 "미국은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유경제'를 선전하기 위해 많은 돈을 뿌려가며 이른바 '공동체 지도자 교육'을 하고 학교교과서를 출판하며 어용단체들에게 거액의 뒷돈을 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미군이 점령하고 있는 이라크의 상황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점령군의 이라크 통치관'이었던 최고행정관 브레머의 훈령을 통해 순식간에 이라크 경제를 신자유주의로 물들였다. 지적재산권의 배타적 점유, 외국자본에 특별한 혜택을 주는 외국인 직접투자 체제가 그것이다. "이라크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통하여 외국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훈령은 채 6쪽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은 나프타(NAFTA) 등 100여 쪽이 넘는 다른 자유무역협정이 담고 있는 모든 내용들이 다 담겨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친미'냐 '반미'냐는 정치적 차이와 대결을 넘어서 전지구적인 경제 정책이 되고 있다. 그 가장 좋은 예가 캄보디아와 브라질의 경제 개혁이다. 미국보다 중국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는 캄보디아는 최근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이 나라의 한 장관은 한 달에 45달러에 불과한 최저임금이 다른 저개발국과의 경쟁과 외국인 투자유치에 장애물이 된다는 이유로 최저임금 철폐를 주장하기도 했다.

전세계 좌파들의 희망을 품고 집권한 브라질 룰라 정부 역시 최근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업개혁 프로그램에 동의했다. 룰라는 이 프로그램에 동의한 가장 큰 이유로 브라질 중·소농의 이익을 내세웠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농업부문 수출보조금과 국내보조금을 줄이면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의 농산물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되고 브라질의 중-소농들이 수출을 위해 상업화하게 되리라는 것. 이에 대해 국제소농들의 연맹체인 '비아깜페시나'(Via Campesina)의 한 브라질 활동가는 "꿈같은 소리"라며 "오로지 소농들을 토지로부터 축출하기만 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 때문에 세계사회포럼 곳곳에서는 '룰라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한 워크샵과 강연이 날마다 진행됐다.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비자정책에 대한 보복으로 자기나라에 입국하는 미국인들에게도 강제로 사진을 찍게 한 브라질 룰라 정부의 경제정책에서도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

이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orld Bank), WTO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유엔 재건프로그램에서도 관철되고 있다. 아이티에서 온 한 활동가는 최근 몇 차례 반복되는 쿠데타와 자연재해로 나라 살림이 파산에 처한 자국의 경제재건을 위한 유엔의 '2박 3일짜리' 회의에서 제출된 재건프로그램에 대해 "'아프카니스탄 재건 프로그램'에서 어떤 부분은 토씨까지 완전히 '오리기'하고 '붙이기'한 것"이라고 비꼬았다. 물론 그 근간은 시장개방과 외국 금융 자본의 유치를 위한 경제 구조조정이다.


국가 중심의 발전?

그렇다면 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어떻게 맞설 것이며 대안은 무엇인가? '남반구포커스'의 월든 벨로는 WTO 반대 국제네트워크인 '우리 세상은 상품이 아니다'(our world is not for sale network)가 주최한 같은 제목의 워크숍에서 "각 나라가 각자의 조건과 처지에 맞는 '국가경제발전계획'(National Development Plan)을 입안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경제주권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해 큰 박수를 받았다.

각 개별국가가 자신의 고유한 경제발전 모델을 선택할 권리가 보장되어야한다는 주장은 국제 경제 질서에 대해서 '혁명'보다는 '개혁'을 지향하는 다른 회의장에서도 계속 제기되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반대하나 시장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 아탁(ATTAC)은 같은 날 열린 '사회인가, 시장인가' 시리즈 강연의 '새로운 국제적 금융질서를 향해서'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개발에 우선순위를 두되 이를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가가 통제하는 시스템"을 대안으로 내놨다. 특히 제3세계 저개발국은 지역단위에서 국가단위에 이르기까지 신뢰할 수 있고 안정적인 금융시스템을 가져야 하며 이 시스템은 토빈세 등의 안정망을 통해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보호받아야한다는 것. 물론 이를 위해 개별 국가는 민주적이고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모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경제주권은 물론 중요하나 여기에 과도한 저항적 의미를 부여하고 대안으로까지 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 그 단적인 예는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주도한 '에큐메니컬 지지 연대'(Ecumenical Advocacy Alliance)가 올해 4월 10일부터 16일까지를 '공정한 무역을 위한 지구적 행동의 날'로 제안한 데서 엿볼 수 있다. 이 제안은 무역 정책을 개별 국가가 취할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하며 그 성공사례로 1960∼70년대 한국의 박정희 정권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WCC는 당시 한국 민중이 박정희 독재와 맞서 싸울 때 외국에서 가장 많은 지원을 했던 단체. 월든 벨로 역시 2000년 한국에서 개최된 아셈민중회의에서 국제투기자본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예로 말레이시아를 꼽았다가 말레이시아의 인권운동가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바 있다. 이런 사례는 개혁을 원하든 혁명을 원하든 반세계화운동이 반드시 민주주의와 인권으로부터 안내 받아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근거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은 국가라는 또 다른 억압체제를 의도하지 않게 옹호하고 강화할 뿐이다. [포르투 알레그레=엄기호]
덧붙임

엄기호 님은 팍스로마나(Pax Romana) 동북아시아 담당(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