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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유의선의 인권이야기 ◑ 56만원으로 살기, 36만원으로 안죽기

나는 단신가구이다. 내가 한달 동안 사는데 필요한 비용이 대략 얼마쯤 되는지 계산해봤다. 월세 15만원, 공과금 5만원, 교통비 10만원, 식대 20만원, 핸드폰 요금 6만원, 사회보험 등 7만원. 여기까지만 해도 63만원이다. 여기에 추가로 드는 술값이나 경조사비, 단체후원금, 가끔이긴 하지만 옷이나 신발, 화장품, 책값, 병원비, 미용실 비용 등을 더해보면, 저축은커녕 영화 한 편 안보는 나의 한달 생활비 규모는 100만원이 넘는다.

추운 겨울, 중증장애인의 몸으로 노숙농성을 결의했던 최옥란열사는 한달에 28만원을 받는 수급자였다. 그녀는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인 최저생계비 28만원으로는 병원에 갈 수도, 아이의 양육권을 찾아올 수도 없었다. 그녀는 살아있는 것이 아닌 삶을 순응하라고 강요하는 정부와 사회의 시선에 맞서 투쟁했으며, 지금도 그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국민이면 누구나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정해놓은 기준선이 있다.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라는 것이 최저임금의 경우 56만원, 최저생계비는 1인가구 35만 6천원이다. 56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이며, 36만원으로 한 달을 사는 것은 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문제는 이렇듯 낮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계층이 800만에 이르고 저임금 노동자 규모 또한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제도의 취지, 대상 등에 있어 서로 다른 제도이기는 하나 최저임금, 최저생계비 제도는 한국 사회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데 얼마나 무능한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제도이다. 특히 '근로빈곤층'의 문제는 노동의 불안정화로 인해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기초법 수급대상자와 비대상자 사이를 넘나드는 민중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답게 살 권리'라고 명시해놓은 제도가 대다수 서민의 삶을 '최저수준'으로 낮추며, 일해도 일하지 않아도 가난한 삶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6월 25일은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날이다.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투쟁주체를 형성해온 최저임금투쟁은 어느 해보다도 그 열기가 뜨겁다. 또한 2004년은 향후 3년 동안 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를 계측하여 결정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의 투쟁이 보다 의미 있는 것은 각각의 투쟁주체들이 만나 2004년 최저임금·최저생계비 공동투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4년 최저임금·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공동투쟁은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본적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기본생활이 보장되는 최저임금·최저생계 보장"의 요구를 제기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투쟁은 단순히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의 보장의 요구를 넘어 불안정한 노동과 낮은 임금이 빈곤을 양산하고 심화시키고 있음을 폭로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 불안정노동과 빈곤은 동시에 사고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빈곤은 더 이상 '노동'과 분리되어 접근할 수 없으며, 그런 점에서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은 불안정노동철폐투쟁과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전선으로 사고되어야 할 것이다. ◎유의선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