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송두율 교수 15년 구형"

검찰, "반국가단체의 지도적 임무" 주장 … 변호인단, "증거 없다"

검찰이 또다시 썩은 국가보안법의 칼자루를 휘둘렀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송두율 교수의 결심 공판에서 서울지검 공안 1부(오세헌 부장검사)는 송 교수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9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이대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피고가 73년 북한 노동당에 가입하고 친북 단체를 결성했으며 저술활동 등으로 남한의 대학생 운동 세력들과 지식인들이 친북적인 입장을 갖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반국가단체의 지도적 임무를 수행한 혐의는 '무기'에 해당하는 중범죄로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에는 국내 진보 학자와 단체 등 100여 명이 방청석을 가득 메워 송 교수 사건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줬다. 검찰의 구형이 발표되자, 법정 곳곳에서 한숨과 헛웃음, 야유가 흘러나왔다.


'노동당 후보위원'은 본인도 모르게?

검찰은 "피고가 반국가 단체의 구성원으로 공작금을 지원을 받고,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북의 지령에 따라 받아 활동하는 등 '지도적 임무'를 수행했다"며 송 교수가 '경계인을 위장한 북의 고위 공작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송 교수의 변호인단은 "검찰이 그토록 주장한대로 피고가 북의 상당한 대접을 받는 노동당 후보위원으로 서열 몇 위에 있었다면 지령을 내려야할 입장이지 어떻게 사회과학원 등과 같은 곳의 지령을 받겠냐"며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김형태 변호사 등 송 교수 변호인단은 북의 노동당 후보위원은 정치국 회의 등에 참여하며 북의 정치·사회 등 여러 사정을 알고 대처해야 하는 지위인데, 외국인인 송 교수에게 이러한 지위를 맡기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덧붙여 되물었다.

송 교수는 이날 심문에서 자신이 "94년 김철수로 기록되어 장례위원이 된 것과 95년 '약봉지'에 김철수와 송두율이 함께 기록된 것을 본 적이 있지만 북에서는 '송 선생 혹은 송 교수'로 불렀다"며 "노동당 후보위원이라는 것을 북으로부터 통보 받거나 이를 수락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연구 활동이 주체사상 유포?

또 검찰은 송 교수의 저술이 북의 대남 적화 활동에 이용돼 국내에 주체사상을 유포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사회주의 비교 방법론은 피고의 연구분야이고 북의 사회주의를 비교하는데 있어 주체사상 연구는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피고는 내재적 접근법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정당한 인식을 갖자고 했고, 여기에는 북에 대한 비판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이러한 연구는)오히려 남북의 화해 정착과 평화통일을 위한 활동"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통일학술회의 같은 경우 정부의 지원 속에 이뤄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변호인단은 "검찰 측에서 주장하는 송 교수가 참여한 친북 단체인 '민주사회건설협의회'는 현 정부가 관여하는 민주화운동 보관 자료에서도 해외민주화운동단체로 기록하고 있음"을 검찰에 알려 줬다.


확인할 수 없는 진술이 혐의사실 근거

변호인단은 "황장엽 씨가 91년 김용순으로부터 '피고가 노동당 후보위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지만, 당시에는 김용순이 대남 담당이 아니라 이러한 말을 할 수 없는 위치였다"며 황 씨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음을 지적했다. 더욱이 여타 증인들의 진술은 주장만 있을 뿐 정작 발언의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증거 아닌 증거'라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증언자의 서명조차 없는 디스켓 등 증거능력을 갖추지 않은 자료도 있다며 재판부가 이를 증거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미 93년 이전의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고, 93년 이후는 송 교수가 외국인 신분임을 주지시켰다.


상생·평화·이해 … 최후진술

"16년 전에 독일말로 쓴 책의 내용을 문제삼아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양 논리를 세우는 검찰에 아연실색했다"는 송 교수는 "지난 넉 달 동안의 심문과 재판을 거치면서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터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남이냐 북이냐'하는 양자택일의 논리가 아니라 남과 북이 공유하는 '상생'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며 서로 묶여 있는 검은 소와 흰 소를 예로 들었다. 대개 '흰 소가 검은 소에 묶여 있다'거나 '검은 소가 흰 소에 묶여 있다'는 식으로 바라보지만, '두 소를 묶고 있는 것은 단지 <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송 교수는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로 '남과 북의 <사이>를 생각하고 그 휴전선<제3의 공간>이 확장된다면, 전쟁이 없다는 뜻에서 소극적 평화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냐'고 자신의 통일 철학을 밝히며 재판정에서 계속되는 분리와 반목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재판 후 인터뷰에서 송 교수의 부인 정정희 씨는 "어떻게 진술에만 근거해서 혐의를 씌울 수 있는지 검찰의 논거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며 "민주화됐다는 사회에서 아직도 구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양심적 학자를 법정에 세우고 재판하는 시대에 맞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지도적 임무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할 수 없는 국가보안법 3조1항2호(반국가 단체에 가입,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를 무기·사형 또는 징역 5년 이상에 처함)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변호인단은 이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이다.

선고 재판은 오는 30일에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