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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서준식 씨 1차 공판 > 누가 양심을 단죄한단 말인가

악법·검찰 상대, 치열한 법정 투쟁

"양심의 자유를 포기한다면, 나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30일 오후 2시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304호 법정.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서준식(50·인권운동사랑방 대표) 피고인의 첫 공판이 열렸다.

"보안관찰법은 '내심'을 처벌하는 법률이다. 따라서 나는 인권운동가로서 양심의 자유와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이 법률에 불복종할 수밖에 없다. 그 댓가로 나는 항상 체포가능한 인물로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삶은 계속될 것이다."

피고인의 모두진술이 계속된다. "나는 가슴에 인권이라는 가치를 안고 산다. 그런데 실정법이 인권이라는 헌법적 요청을 부정할 때 인권운동가로서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실정법이 아닌 인권의 헌법적 요청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인권운동가가 악법철폐를 주장하면서 악법을 꼬박꼬박 지키는 것은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검찰의 '내심'

1백50여 방청객의 주목 속에 모두진술이 끝나고 검찰신문이 이어졌다. 신문에 나선 김용호 검사는 피고인의 과거 행적을 들추기 시작했다. 특히 서 피고인의 해외활동과 관련된 신문이 집중됐다. 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 참석 경위, 97년 5월 독일 방문시 초청자가 누구인지, 같은해 7월 일본을 방문해 형제들을 만났는지, 형제들이 조총련 소속이 아닌지 등.

변호인측의 "본 사건과 관련없는 질문"이라는 이의제기에 검사는 '내심'을 털어놨다. "서준식 씨의 '이적' 목적을 입증하기 위한 신문"이라는 것. 즉, 그의 해외활동이 북한과 연계가 있다는 쪽으로 몰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검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피고인의 전과, 국가보안법에 대한 지식, 행적, 문건 내용 등으로 볼 때, 피고인은 사회주의 지향을 가지고 북한에 동조하고 있다. 따라서 <레드헌트>를 상영한 것은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목적인 것이 분명하지 않냐"고. 그러나, 이에 대한 서 피고인의 답변은 간단했다. "나는 인권운동을 했을 뿐이다. 나의 인권운동에 대해 검사가 어떻게 해석하든 그것은 자유다."


"법치주의 부정하는 건 검찰"

이날 모두진술에서 서 피고인은 '현행 국법질서를 전면 부정하는 자'라는 검찰측 주장과 관련, "오히려 법치주의를 뿌리채 흔드는 것은 검찰"이라며 "법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제멋대로 집행하는 검찰이 국가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서 피고인은 "법 적용은 평등해야 한다"는 주장 아래, 검찰에 여섯가지 내용에 대한 석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재판부 '사복착용' 신청 기각


한편, 재판이 시작되기에 앞서 변호인단은 "미결수인 서준식 씨가 사복을 입고 재판을 받도록 해줄 것"을 재판부에 신청했으나, 최정열 판사는 "수의착용은 일반적 관행이고 다른 피고인들과 달리 특별대우를 할 수 없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변호인측은 다시 "특혜가 아니라 법률상 미결수의 권리에 따라 대우해 달라는 것"이라고 항변했지만,최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관련기사 1월 24일자>

지난해 11월 4일 서준식 씨가 체포된 이래 석달만에 열린 이날 재판은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됐다. 설 연휴 다음날임에도 불구하고 1백50여 방청객이 법정과 복도를 가득 메웠고, 고영구 변호사, 최영도 변호사(민변 회장) 등 11명의 변호사가 대거 법정에 참석했다. 다음 공판은 2월 20일 오후 2시.


<검찰 석명 요구사항>

1. 인권영화제 보다 한달 앞서 열린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국내외 독립영화들이 무더기로 심의를 받지 않고 상영됐다. 왜 부천시장은 구속하지 않았는가.

2.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레드헌트>를 상영했다. <레드헌트>가 이적표현물이라면 왜 부산시장을 구속하지 않고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는가.

3. 부산영화제에서 <레드헌트>가 심의를 통과했다. 이적표현물을 심의통과시킨 사람에게 어떤 문책이 있었는가

4. 항상 보안관찰법을 위반해 왔는데, 왜 하필 97년 11월에 구속했는가.

5.「참된 시작」을 쓴 시인과 출판사인 창작과비평사, 책을 유포시킨 대형서점 관계자는 왜 조사하지 않는가.

6. 다른 모금운동에 대해선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을 적용하지 않고 왜 인권영화제만 문제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