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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오두희의 인권이야기 ◑

길 위에서 부르는 평화의 노래


내일 모레면 입춘이다.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많이 남아있지만 곧 봄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다. 그래서 바쁜 사람들이 있다. 평화유랑단 '평화바람'단원들이다. 왜냐하면 2월 11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2004년 평화유랑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평택은 주한미군의 한강이남 이전계획에 따라 용산미군기지를 시작으로 미군이 총집결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해 우리는 노무현정부의 이라크파병 결정에 그냥 있을 수가 없어 특별한 재주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평화유랑단을 꾸렸다. 반미, 환경, 생태, 교육, 노동, 인권운동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해 온 사람들이 '모든 억압과 폭력에 반대한다'는 큰 대의에 합의하고, 1년 동안 가난하게 살기로 작정하고 거리로 나섰다.

우리는 그동안 부당한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에 맞서 농성, 집회, 선전, 거리단식 등 '무엇이든 다 한다'는 각오로 거리에서 걸레처럼 취급되어도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국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눠도 상관없다는, 양심의 가책도 못 느끼는 사회의 여론을 접하며, 거리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다시 돌아보았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말을 나누고 생각을 나눠보기도 했다.

서울 인사동, 신촌, 대학로, 인천 등지를 다녔다.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그린 자동차를 앞세워 밤마다 거리에서 판을 벌였다. 어색한 몸짓으로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내용의 개사곡을 부르거나, 아마추어들이 만든 영상물을 틀면서 사람들과 만나기를 시도했다. 옷을 있는 대로 끼워 입어야 할만큼 추운 겨울에 사람을 불러모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대중스타도 아닌 우리를 보고 누가 발걸음을 멈추겠는가! 그렇지만 우린 재미있고 행복했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달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과 '말걸기'였다. 모두들 왜 그렇게 바쁜지. 길을 가면서도 핸드폰을 통해 쉴 새 없이 일한다. 말걸기가 너무 힘들어 사람들의 얼굴과 사람들의 행동을 오랫동안 바라보기만 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자기와 관계없는 것은 관심도 없다. 소비사회적인 방식에 세뇌되어 시나 자연의 경이로움 혹은 음악을 즐기는 것이 시간 낭비라 생각한다.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여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본주의 인간맞춤형이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1월 한달 동안 여정을 멈췄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에게 '말걸기'를 배우고 있다.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드는 자만이 남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했던가. 그래서 우린 지금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점차 뻣뻣한 몸, 어색하던 몸 동작이 부드러워지고 녹여져 마음은 '예민함'으로 생기를 얻고 있다.

다음 주면 전국 유랑을 떠난다. 어린 시절, 동네 다리 밑에 모인 사람들 틈에서 약장수의 만담에 넋을 놓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재미있어 학교에 가는 것도 잊었던 그 추억을 되살려 정성된 마음으로 평화순례를 할 것이다.

(오두희 님은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단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