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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4회 세계사회포럼을 다녀와서 (1)

뭄바이 민중들과는 괴리된 '희망의 세계화' 외침

"세계사회포럼은 신자유주의 지배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생각을 깼고, 국제적인 참여로 전세계적인 운동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지난 21일 인도 뭄바이에서 6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친 4회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이렇게 모아진다.

그렇지만 앞서의 3차례의 포럼처럼 이번 포럼에서도 여전히 결의문은 채택되지 않았다. 대회 조직위원회가 지난 20일 개최한 '신자유주의와 전쟁 그리고 세계사회포럼의 중요성'이란 패널 토론에서 "논의와 행동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서 각국의 운동 성과를 결집시키고 중요 결정들을 선언문 형태로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었음에도 말이다.

다만 포럼 기간 중 네 차례의 사회활동가 총회를 거쳐 만들어진 '사회운동과 대중 조직의 호소문'이 4회 세계사회포럼에서 발표된 유일한 공식적인 논의 결과였다. '투쟁의 세계화! 희망의 세계화!'를 주창한 이 호소문에서 운동가들은 '미국과 영국 그리고 동맹국들에 의한 이라크 침략에 항의하는 국제적인 반전운동을 3월 20일에 가질 것'과 함께 '홍콩 또는 다른 장소에서 열리게 될 WTO 각료회의를 저지하고 공유재, 환경, 농업, 물, 건강, 공공서비스와 교육을 지키기 위한 사유화 반대투쟁에 연대할 것'을 요청했다. 구체적인 투쟁 일정으로는 3월 8일 국제여성의 날, 3월 30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인종분리 철폐 투쟁의 날, 4월 17일 국제농민의 날 등이 합의되었다.

포럼 기간 내내 주창되었던 '무장한 세계화'에 맞서는 반전운동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결합에 대한 요구가 이처럼 합의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국제 공동투쟁 일정 모아내 다행


브라질에서 열렸던 3차례의 포럼이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강의형 포럼'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인도포럼은 다양한 민중문
화를 동원한 길거리 시위와 퍼포먼스, 공연 등이 주가 된 '길거리 포럼'이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원론적인 얘기가 되풀이되는 텅 빈 세미나장보다는 길거리에서 민중들이 직접 참여하여 포럼을 역동적으로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화의 직접 피해 당사자격인 농민,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 아동, 빈민, 불가촉천민(Untouchables) 집단인 달리트 등은 자신들의 전통 타악기와 춤을 앞세워 공연과 행진을 조직했다. 그들은 반전, 반미 구호도 목소리 높여 외쳤다.

이렇게 그들의 춤과 행진, 연설로 행사장은 먼지와 함께 뒤덮여 열기가 높았지만, 정작 뭄바이의 민중들은 세계사회포럼에 참여할 수 없었다. 조직위가 발행한 비표를 착용하지 않는 한 경찰이 지키고 서 있는 행사장 문을 아무도 통과할 수 없었다. 뭄바이 시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은 행사장인 네스꼬 그라운즈 입구가 최대였다. 행사장 안에서도 인도 경찰은 긴 곤봉을 들고 열을 지어 다녔다. 경찰에 의해 뭄바이 민중들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차단되었다.

행사장 밖을 벗어나면 신발도 신지 못한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고, 가족 단위의 빈민들이 거리 곳곳에서 노숙하고 있었다. 하지만 빈곤의 심각성과 반인권성, 신자유주의에 의한 빈곤의 확산 문제를 논의하는 그 자리에 실제 주인공들은 초대받지 못한 것이다.

반면, 행사장에서 각종 공연과 행진을 할 수 있었던 인도 사람들은 기독교계 단체들에서 지원을 받은 단체 소속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비단 인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3세계에서 민중들과 밀접하게 결합하여 활동하는 단체들이 이번 포럼에 참가했다기보다는 서구의 펀드를 받고 언어구사능력을 갖춘 단체 활동가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행사장 담 안과 밖은 확연히 구분되었다. 담 밖의 뭄바이 시민들은 세계사회포럼이 열리고 있는지도 몰랐으며, 포럼에서 주장되는 세계화의 문제도, 반전의 주장도 듣지 못했다. 인도의 대중조직들은 이번 포럼을 준비하면서 대중들을 교양하고 조직하지 못하였고, 또 그러기에는 너무 영향력이 미약하고 분열되어 있었다.


포럼에 초대받지 못한 뭄바이 민중들


그러기에 인도 공산당 그룹들이 같은 기간 주최하였던 '뭄바이 레지스탕스'가 세계사회포럼이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을 유보하고 있고, 기회주의적이라며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던 것을 무작정 무시할 수는 없다.

또 이번 포럼이 세계 절반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아시아에서 열렸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실제 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서구 단체들이라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서구의 단체들은 제3세계 민중들의 투쟁의 성과물들인 토지와 물, 식량에 대한 권리를 승인해 주고, 그 투쟁을 마치 자신들이 주도하는 것처럼 외양을 만들어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2001년 다보스 포럼에 대항해 처음 개최되었던 때와 비교하면, 매년 되풀이되는 소모적인 논의를 넘어 구체적인 세계적 차원의 운동을 합의해나가게 된 것은 소중한 발전이다. 이 포럼의 영향으로 유럽사회포럼이 열리는 것을 비롯하여 대륙별 토론이 활성화되고, 각국에서도 사회운동간의 연대를 높여가는 포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세계사회포럼은 내년에 다시 브라질로 갔다가 다음 해에는 아프리카로 가 더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낼 예정이다.


세계사회포럼의 미래는?


21일 폐막식에서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세계사회포럼의 성공적 폐막을 축하"했다. 하지만 축하하기에는 이르다. 포럼이 보여주는 '다른 세계'에 대한 대안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포럼이 넘어야 할 산이 아직은 많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