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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이해관계에 짓눌린 유아교육·보육의 공공성

통과 앞둔 유아교육법안·영유아보육법 개정안 한계 많아

보육시설과 유치원간의 이해 대립으로 7년 동안이나 제정이 무산돼 온 유아교육법안과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8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어 시장에 의존해 온 영유아 교육과 보육의 공공성 강화가 기대되고 있다.

2003년 6월 현재, 사립유치원이 전체의 78%, 민간보육시설이 전체의 87%를 차지하는 등 한국사회의 영유아 보육과 교육은 시장에 크게 의존해 왔을 뿐만 아니라 비용 부담도 고스란히 개별 가족에게 전가돼 영유아 보육과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낳아왔다.

그러나 이들 법안이 통과되면 초등학교 취학 직전 만5세 유아에 대한 무상교육·보육이 단계적으로 실시되고,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저소득층 자녀 중 만 3-4세 유아의 교육비도 지원받게 돼 유아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중대한 발판이 마련될 전망이다. 또 유치원 종일반이 획기적으로 확대되며, 유아교육 시설 종사자들도 최하위 수준의 경제적 대우와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게 된다.

무상 유아 교육·보육의 단계 실시

하지만 두 법안이 다가오는 8일 국회에서 통과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단 전국 유치원·보육시설의 83%를 차지하는 관련 단체가 최근 합의서를 교환하고 두 법안의 통과를 지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보육시설연합회 등이 시설 폐쇄를 우려해 법안 통과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도 보육시설의 이해만을 반영한 채 보육의 공공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는 영유아보육법 수정안을 제출할 예정이어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5일 한국보육교사회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한나라당의 개악 시도를 강력 규탄했다. 한국보육교사회는 한나라당의 수정안이 '시·도지사가 정하는 범위 내에서 보육비용을 수납할 수 있다'는 원래의 개정안을 '보육료 및 그 밖의 납부금을 수납할 수 있다'라고 수정한 것은 보육료의 인상을 부추겨 부모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보육시설이 특기적성교육 등 파행적인 교육으로 얼룩질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종일제를 원칙으로 하지 않고 반일제와 시간연장제를 도입한 것은 맞벌이 가정의 양육 지원이라는 보육사업의 본래 기능을 크게 훼손한 것이라며, 국회가 원안대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6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유아교육법 만장일치 통과를 촉구하는 전국교사대회'를 열고, 원안대로 두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전교조는 "그 동안 관련단체들 간의 갈등을 이유로 유아교육법 제정과 영유아보육법 개정을 미뤄왔던 국회와 각 정당은 이제 더 이상 370만 영유아의 행복과 권리를 볼모로 당리당략을 따지지 말라"고 주문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전교조 원영만 위원장은 "국회의원들은 반드시 필요한 법은 마련하지 않고 집시법 개악이나 FTA 비준안 처리 등과 같은 자신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법만을 처리하려고 한다"고 꼬집으면서 "유아교육은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아교육학부모시민연대 장재영 대표도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학부모들은 그 동안 너무 힘들었다"며 "유아들을 위해서 하루 빨리 법을 제·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익단체 입김으로 공공성 후퇴 우려

한편,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6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두 법안이 취학 1년전 아동에 대한 단계적 무상보육 및 교육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한 조치"라며 일단 환영하면서도 "(한나라당의) 영유아보육법 수정안과 유아교육법안의 내용들은 공공성의 확대를 위한 적절한 수단들이라기보다는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는 관련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우선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교육의 공공성에 있어서 저렴하고 양질의 교육의 제공할 수 있는 국공립 시설의 확충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법안들에서는 이러한 전제없이 민간시설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갈 것만 언급하고 있다"며 "공공성이 담보되지 못한 상태에서의 사립 시설에 대한 정부 지원이 고려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아동을 장시간 보호하는 시설의 기준을 보다 엄격히 하고 이를 (신고제에서) 인가제로 전환하는 것에는 적극 찬성하나, 기존 시설도 일정한 경과기간을 통해 이러한 기준에 도달하도록 해야 시설 미비로 인한 아동의 피해와 교사의 자격미달로 인한 많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성과 아동 이익 제대로 반영 못해

이처럼 그 동안 이익단체들 사이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영유아 보육과 교육의 공공성 강화가 번번이 무산되어 온 상황에서 또다시 누더기 법안이 통과될 우려가 크다. 국회가 시설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데 앞장서기보다 영유아 보육과 교육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에는 지금까지 고통받아온 아이들과 부모들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