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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국가인권위원회 들여다보기 : 신임 인권위원 김만흠 교수를 찾아

준비된 자세 미흡 …반년 넘은 공석, 졸속 인선 결과

올 1월 곽노현 교수의 사임으로 반년 넘게 비어있던 인권위원 자리가 드디어 채워졌다. 지난 1일 김만흠 가톨릭대 아·태지역연구원 교수(정치학)가 신임 인권위원으로 임명된 것. 앞서 김 위원은 민주당의 추천을 받아 지난달 15일 국회에서 선출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재연된 밀실 인선으로 김 위원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와 의견개진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됐다. 이에 11일 김 위원을 직접 찾아가 그의 인권 철학과 포부를 들어봤다.

한국정치학회 상임이사, 민주개혁국민연합 정책위원장 등 그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김 위원은 지금까지 '인권'이 아니라 '정치'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왔다. 김 위원은 한국정치가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사는 시스템'이라고 보고 '우리 사회 내부의 공동체 질서'에 대해 고민해 왔다.

"10명이 모여 있는데 9명이 나머지 1명을 죽여버리자고 했을 때, 사람들에게 '이것이 민주주의와 맞는 것인가' 물으면 모두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와 유사한 현상들이 많이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처벌의 대상이 아닌데, 다수나 강자의 힘에 의해 처벌의 대상으로 되어 버린다. 이제는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공존을 의미하며, 공존에는 반드시 상대방, 특히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집단에 대한 인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더불어 사는 공동의 질서'라는 김 위원의 화두는 분명 인권의 원리와 맥이 닿아 있다. 이후 김 위원의 적극적인 인권옹호 활동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공존의 논리 설파, 소수자 인정 기대

하지만 한국사회의 인권현실을 바라보는 김 위원의 눈은 아직 예리하지 못했다. 김 위원은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문제, 국가보안법을 포함한 사상·이념의 제약 문제, 과거청산의 문제 등 기본적인 인권문제를 나열할 뿐, 자신의 관점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인권사안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못했다. 노동권·건강권·환경권 등 인권상황의 전반적인 후퇴를 몰고 올 경제자유구역과 관련해, 김 위원은 인권위가 입장을 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제자유구역에 대해 심도 깊은 고민을 한 적은 없는 듯 했다.

또한 김 위원은 인권사안을 해결하는 대안 부분에서 절충적이고 타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 위원은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 "어느 하나가 옳고 틀렸다는 식이 아니라, 서로간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명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해석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여부에 대해서는 끝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최소한 '국가보안법이 반인권적이다'라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이야기하는 수준이었다.


절충적, 타협적 태도 아쉬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자 하는 김 위원의 태도에는 진실성이 있었지만, 인권위원으로서 충분히 고민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이는 급박하게 이루어진 인선과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 위원은 국회 표결 일주일 전, 민주당 쪽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서 인권위원직을 수락했다고 했다.

하지만 11명의 인권위원 중 법조계 출신이 7명이나 되는 현실 속에서 인권위가 엄격한 법률적 사고로 적극적인 인권옹호 활동을 벌이고 있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는 데 김만흠 신임 인권위원의 일정한 역할이 기대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향적인 판단을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라는 김 위원의 포부가 현실화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