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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부안의 분노는 내일 우리의 절망

말바꾸기, 기습처리, 폭력진압으로 얼룩진 핵폐기장

"17년동안 어떤 정권도 해결 못한 일을 마침내 당신이 해내는 것 같아 흡족하십니까? 저는 지금 당신에게서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보고 전두환의 피묻은 군화를 봅니다."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에 나선 문규현 신부(전북평화와인권연대 공동대표)가 최근의 '부안사태'와 관련해 30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문 신부는 "대통령은 투명하게 군민들을 설득하라고 하지만 투명해져야 하는 것은 당신이고, 당신의 관료들이며, 핵산업체와 핵전문가들"이라며 "어떤 추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길래 그토록 다급하게 밀어붙이고, 무엇이 있길래 엄청난 공권력으로 엄호하며 부안을 한 순간에 찢어 놓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우리를 폭력과 엄포, 거짓과 술수로 다스리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속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핵공포 없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삭발한 어미와 그 어미의 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던 아이의 손, 소 팔아 마련한 200만원을 활동기금으로 내놓은 가난한 할머니, 응급실에 실려와 치료를 받자마자 다시 싸우러 나가던 아낙네… 이들의 가슴속에 넘치는 생존과 평화에 대한 열망이 당신을 구하고 나라를 구할 것"이라며 가슴 절절한 편지를 보냈다. (편지 전문 www.cham-sori.net)


십수년의 논란 … 순식간에 '부안' 결정

주민 의사를 무시한 핵폐기장 신청과 선정과정, 밝히지 않고 있는 부지 적합 조사결과와 선정 위원,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폭력·강경 진압 등 부안 핵폐기장 선정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부안사태'로까지 불려지며 반환경, 반인권, 반민주라는 최악의 오명을 뒤집어 쓴 채 강행되고 있다.

핵폐기장 선정 문제는 비단 올 한해 영광, 고창, 울진, 영덕, 신시도, 부안 등만 들쑤셔 놓은 것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10여년 동안 안면도(90), 양양(92-93), 굴업도(94-94) 등을 거론하며 핵폐기장 부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 왔지만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했다.

십수년간 난항을 겪어 오던 핵폐기장 부지 선정 문제는 지난 14일 부안군(군수 김종규)의 기습적 유치 신청, 24일 산자부의 전격 선정으로 '순식간'에 끝났다. 단 열흘만의 일이었다. 부안군 주민들은 "단 한 차례의 공청회도 없이, 어제까지 유치 신청을 안 한다던 군수가 하루 아침에 신청을 해 버렸다"며 분노하고 있다. 김종규 부안 군수는 유치 신청 기자회견을 하는 11일 바로 전까지만 해도 '절대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않겠다'고 밝혔었다.


하루 아침에 빼앗긴 삶의 터전

군민을 무시한 군수의 말 바꾸기와 정부의 강행처리에 지역주민과 환경·사회단체는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

'핵폐기장 백지화 핵발전소 추방 범부안군민대책위' 이현민 투쟁위원장은 "7만 군민이 사는 부안에서 1만 이상이 모이는 집회를 일주일에 2차례나 벌일 정도로 전 군민이 핵폐기장 선정을 반대하고 있다"며 부안의 상황을 설명했다. 부안군 '위도'가 부지로 선정된 이후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는 부안 군민들은 위도에 핵폐기장이 들어설 경우, 관광과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온 삶의 터전을 잃게 될 것이라며 부지 선정을 반대하고 있다. 원전 핵폐기장이 있는 앞바다에 과연 누가 관광을 오고, 그곳에서 잡은 물고기를 누가 사먹겠냐는 호소인 것이다.

30일 서울로 상경한 80여명의 부안 군민들은 핵폐기장 철회와 경찰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청와대 앞에서 갖고 경찰청을 항의 방문했다. 이들은 31일에도 한국수력원자력(주)과 각 정당을 항의 방문할 계획이며, 다음달에는 대규모 집회를 잡는 등 한 판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부안군민 분노에 폭력진압 나선 정부

지난 22일 진행된 핵폐기장 유치 반대 부안군민대회에 참석한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경찰과 시위대에 대한 엄중 대처를 표방한 정부를 두고 사회 각계의 비난이 빗발쳤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등도 31일 성명을 내고 "경찰청 산하 1기동대 1001-1003 중대는 전국의 큰 집회에 투입되는 시위 진압 전문 부대로 악명이 높다"며 대부분 농·어민이고 아이들까지 참여한 대중집회에 이들 시위진압부대를 투입하여 과잉 진압한 책임자의 사과와 처벌을 요구할 계획이다.


전국적 대응 필요 공감

한편, 30일 부안사태와 관련하여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여성단체연합 등 환경사회단체들은 간담회를 갖고 부안사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찾아 나섰다. 이현민 부안군대책위 투쟁위원장은 부안 핵폐기장 반대 싸움은 부안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폭력의 문제, 민주적 절차의 문제인 동시에 환경과 생존의 문제로, 전국적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반핵국민행동의 양이원영 사무국장은 "현재 나오고 있는 핵폐기물 처리는 기존 핵발전소의 임시보관소에 저장하는 방법으로도 2020년까지 문제가 없다"며 그럼에도 핵폐기물 처리 시설을 무리하게 지으려는 정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핵폐기장 문제는 단순히 폐기물처리장을 하나 더 짓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핵발전소의 확충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날 모인 단체들은 현시점에서 '핵'문제에 대한 판단이 앞으로 다가올 사회와 패러다임에 대한 선택과 무관하지 않다는 데 공감하고, 일차적으로 부안사태 해결이라는 현안에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