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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국가인권위, 전쟁반대 입장 밝혀

인권단체, 늦었지만 환영…정치권․일부 언론, 인권위 흠집내기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이라크전쟁 반대 입장'을 밝혀 현 정부의 파병계획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26일 인권위는 오전 7시 30분 열린 긴급 전원위원회에서 현 이라크전과 관련한 의견서를 채택하고, "UN의 합법적 승인을 거치지 않은 채 시작된 이번 전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또 "미국의 무차별 공중폭격으로 이라크 민간인 희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지상전이 본격화될 경우 희생자 수는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면서 전쟁의 조속한 중단을 촉구했다.

한국 정부와 국회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헌법 5조 1항의 '국제평화 유지와 침략전쟁 금지' 의무를 상기시키면서 '헌법에 명시된 반전·평화·인권의 원칙을 준수해 신중히 판단할 것'과 '이라크전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파병 반대'라는 명시적 언급은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서인지 이번 의견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인권위가 이라크전의 불법성을 지목하고 정부와 국회에 '신중한 판단'을 주문한 것은 사실상 파병계획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내포한 것으로 풀이된다.

45분간 진행된 이날 회의에는 김창국 위원장을 제외한 7명의 인권위원들이 참석했으며, 2명이 반대의사를 개진했지만 결국 인권위 입장을 표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김 위원장은 전화로 찬성의사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인권위는 25일 파병동의안의 국회 표결을 앞둔 시점까지도 아무런 의견도 내놓지 않아 '인권옹호기관으로서의 책임 방기 아니냐'는 비판을 인권단체들과 시민들로부터 받아왔다. 인권위 직원 30여명도 인권위의 공식 의견이 나오지 않자, 25일 오후 "인권의 이름으로 전쟁과 파병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독자적으로 밝혔다. 그동안 침묵하던 인권위가 긴급히 의견서를 내놓기까지에는 이러한 안팎의 요구와 국민적 반전 여론이 작용
한 것으로 보인다.

인권단체들은 이를 크게 환영하면서도 인권위의 느림보 행보와 명시적 '파병 반대'가 언급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다는 분위기다. 다산인권센터의 박진 활동가도 "뒤늦게나마 인권위가 국가기구 중 유일하게 반전 의견을 내 한국이 이라크민중과 세계인 앞에 덜 부끄러울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먼저 독자 입장을 표명했던 인권위 직원들도 인권위 의견서가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고 인권위 의견서로 자신들의 의사를 대체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입장은 달랐다. 한나라당은 인권위 의견서가 발표되자 대변인 논평을 내고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사실상 대통령 뜻에 반하는 입장을 밝힌 것은 본분을 망각한 국론분열 선동행위"라며 김창국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와 사퇴까지 요구했다. 민주당도 "정부와 사전조율 없이 국회에 파병동의안이 제출된 상황에서 이런 의견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일부 언론에서도 인권위 직원들의 성명 발표를 '집단행동 파문'이라는 식으로 문제삼아 인권위 흠집 내기에 나섰다.

이러한 신경질적 반응들은 모두 인권위의 위상과 법적 권한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자 파병을 강행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박진 활동가는 "인권위는 독립적 국가기구로서 대통령을 위시한 행정부와 국회로부터 독립하여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인권옹호기관인 인권위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인권위 직원들의 성명과 관련해서도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는 추세에서 공무원이라고 해서 입을 닫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