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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조사실 수용자 작업·운동 등 제한, 기본권 침해"

서신·접견 제한 요건 강화, 남용 우려는 여전

13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아래 인권위)는 교도소 내 규율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 수용자에 대해 집필·작업·운동·신문 및 도서열람·라디오청취·TV시청·자비물품사용 등을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인권침해라며 이에 대한 규정의 삭제를 법무부 장관에 권고했다. 그러나 접견·서신왕래·전화통화의 제한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라는 단서 하에 그대로 두도록 해, 이번 권고의 한계점을 드러냈다.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박모 씨는 입실 거부로 지난 5월 8일부터 14일까지 7일간 조사실에 수용돼 있는 동안, 과도하게 인권을 제한당했다며 6월 21일 광주교도소를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조사 결과 진정인 박모 씨가 조사실에 7일간 수용됐는데, 7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은 채 접견·서신왕래·집필·운동 등을 금지당했다"고 밝혔다.

현행 '수용자 규율 및 징벌에 관한 규칙(아래 징벌규칙)' 제7조 2항은 "소장은 규율 위반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조사기간 중 수용자에 대한 접견·서신왕래·전화통화·집필·작업·운동·신문 및 도서열람·라디오청취·TV시청·자비물품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국가인권위는 "광주교도소 측은 증거인멸과 조사방해가 많아 징벌규칙을 적용했다고 주장하나, 박 씨가 자술서에 입실 거부의 사유를 명시했고 조사실 입실도 순순히 응한 것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이나 조사방해의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또한 국가인권위는 "4월부터 6월까지 광주교도소 조사실에 수용됐던 징벌혐의자 1백3명의 기록을 검토한 결과, 99명이 조사실에 수용되자마자 운동·접견·서신교환·집필 등을 금지당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징벌의 혐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사실 수용 즉시 징벌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라며 징벌규칙 제7조 2항을 '접견·서신왕래·전화통화'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명백한 경우에 한해 제한할 수 있다'고 개정하고 나머지 활동의 제한이나 금지 규정은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국가인권위는 "단 '접견'의 경우, 변호인 접견은 어떤 이유로든 제한·금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법무부가 이번 권고를 받아들여 관련 규정을 개정할 경우, 조사받는 수용자에게 가해지는 제약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국가인권위의 이번 권고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명백한 경우'라는 요건 하에 접견·서신왕래·전화통화 등 외부와의 교통권을 여전히 제한할 수 있도록 해, 이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상희 변호사는 "서신·접견·전화통화 등은 모두 검열이나 교도관의 입회를 통해 '증거인멸'의 우려를 방지한다"며 "그런데 굳이 징벌규칙을 통해 징벌 혐의자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의 한 위원은 "교도소 측이 서신·접견·전화통화를 제한했을 때에는 '증거인멸의 명백한 우려'가 있는지 입증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엔 접견교통권을 제한해선 안된다는 것이 개정 권고의 의미"라며 "이렇게 개정된다면 대부분의 징벌 혐의자에 대해 접견교통권이 제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명백한 경우와 개연성 사이의 경계가 애매한 이상 교도소 측은 언제나 명백하다고 주장하기 마련일텐데, 그때마다 인권위에 진정을 하고 구제를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행형법 시행령은, 접견 중 증거인멸 등을 꾀하면 그때 교도관이 제지하거나 접견을 종료시키고 서신 역시 검열을 통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면 그 때 사유를 알리고 발송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교도소 내의 규율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 수용자에 대해서도 이에 준해 하면 될 일이지, 증거인멸의 우려를 판단해 미리부터 외부와의 교통권을 제한하는 징벌 규칙을 남겨 둘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역시 지난 10월 구금시설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조사기간 동안 수용자의 자유로운 접견·집필과 서신왕래 등을 허용해야 하며 이를 제한하는 징벌규칙 제7조 2항을 완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권위는 이번 권고가 교도소 내 조사받는 수용자들의 인권 개선의 폭을 소극적으로 제한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