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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국가인권위원회 들여다보기 : 구금시설 내 인권침해, 막힌 구제의 길을 뚫어라

'구금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조사'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의 설립 초기부터 주목받아 온 중요 활동이다.

신속하게 그리고 경제적 부담이 없이 인권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인권위의 목적을 가장 잘 실현해야 할 사안 중 하나로 '구금시설의 인권침해조사'가 꼽혔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를 조사할 수 있는 권위와 권한을 가진 인권전담 국가기구에 거는 기대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쌓이는 진정사건

구금시설의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는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건수가 증명하고 있다. 9월 30일 현재 인권위에 진정된 사건분류를 보면, 총 진정건수 2천 7백 86건 중 구금시설에서의 인권침해진정은 8백42건으로 전체 진정건수의 30%가 넘고, 이는 진정사안 분류 중 가장 많은 건수에 해당한다.

다음은 구금 시설 중 가장 진정이 많이 접수된 5개 소에 대한 진정 현황이다.①광주교도소(90) ②청송제2교도소(80) ③대구교도소(60) ④대전교도소(60) ⑤청송교도소(56) (9월 30일 기준, 국가인권위 통계, 괄호안은 진정건수)

이처럼 구금시설과 관련해 많은 진정사건이 접수됐지만, 인터넷에 공개된 바에 따르면 인권위가 구제결정을 한 진정 수는 총 4건에 불과하다. 인권위 통계 상 구금시설 관련 진정이 매달 평균 1백여 건에 달하는 것을 볼 때, 상당수의 사건이 잠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중엔 진정인 스스로 취하하거나 인권위가 각하한 경우도 포함돼 있지만, 인권위는 아직까지 기각 건수, 조사 중인 건수, 각하 건수에 대해서는 통계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인권위에 접수된 많은 진정이 계속 쌓여간다는 사실은 인권운동사랑방의 진정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권위 설립 직후 지난해 12월, 인권운동사랑방은 구금시설의 인권침해와 관련해서 16건을 진정한 바 있다. 그런데 피해 당사자가 진정을 취하한 3건을 포함해 총 4건에대해서만 각하결정이 내려졌을 뿐 나머지12건은 아직도 조사중에 있다.

쌓이는 진정 속에 '신속한 구제'를 기다리는 진정인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권위는 깨달아야 한다.


결정만 하면 '땡'인가?

또 진정사건 구제결정에 따른 후속조치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인권위 최초의 구제결정이었던 울산구치소 구숭우 씨 사망 진정에 대해 '검찰의 수사의뢰' 결정(2001년 12월)이 내려진지 11개월이 지났지만 구 씨 사망사건(담당 울산지검 유현식 검사)은 아직도 '수사 중'이다. 인권위는 조사를 통해 인권침해의 상당한 이유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고, 따라서 수사를 의뢰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검찰이 보인 성의는 11개월 째 '수사 중'이라는 것.구씨의 동생은 "힘없는 서민이니까, 시간을 길게 지연시키는 것 아니겠냐"고 검찰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한편, 인권위에 대해서도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구씨 사망사건 진정을 도왔던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국장은 "인권위는 구씨 사건 수사의뢰와 관련해 수사 진척에 대해 검찰에 질의 공문을 한 번 보낸 게 전부"라며 후속조치에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인권위가 스스로 법제상의 한계를 이유로 활동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법조문에 나와있지 않아도 기자 회견이나 사건진행 브리핑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수사 촉구 방법이 어디 법에 나와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냐"며 "인권위가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있냐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표류하는 실태조사

침해진정 조사와 더불어 구금시설의 인권상황 개선을 기대하며 주목했던 인권위의 활동은 '구금시설 내 실태조사'다. 지난해 말, 구숭우 씨가 울산구치소에서 사망하고 이어 서울 구치소의 조순원 씨, 수원구치소의 박명원 씨가 사망하면서 구금시설내 의료 실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기도 했다.

2002년도 인권실태조사 연구용역사업 중엔 '구금시설의 의료실태조사 및 의료권 보장을 위한 연구'가 포함돼 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아래 인의협)가 이 조사사업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실태조사 사업은 법무부의 비협조로 빨간 신호등이 켜진 상태다.

인의협의 우석균 정책실장은 "방문 실태조사를 위해서는 인권위와 법무부의 협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4주 째 법무부가 협의를 미루고 있어, 본 조사는 시작도 못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12월까지 예정된 조사가 이처럼 지연된다면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구금시설 내 인권침해의 구제와 실태조사가 이처럼 난항을 겪고 있는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인권위는 도무지 외부에 꺼내놓지 않는다.

따라서 인력부족 때문인지 전문성의 문제인지 혹은 기관의 비협조 때문인지, 법제상의 문제인지 외부에서는 진단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인권위는 우선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