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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중대범죄에 대한 재판권 행사할 수 있어야"

불평등한 소파협정 개정 방향 토론

주한미군지위협정(아래 소파협정)의 개정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높은 가운데, 그 구체적인 개정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12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사회단체 뿐 아니라 4개 정당과 외교부·법무부·국방부 등 관련 부처에서도 함께 했다.

소파협정 중 가장 많이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재판권 행사에 관한 부분이다. 소파 본협정은 미군이 공무 중 수행한 범죄에 대해서는 파견국인 미국이, 기타의 범죄에 대해서는 접수국인 한국이 형사재판관할권을 행사하고, 쌍방은 그 범죄가 중요한 범죄라고 생각할 때 상호 재판권 포기를 요청하면 다른 상대방이 이를 '호의적으로 고려'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한미소파협정의 부속협정인 합의의사록은 한국에 1차적 재판권이 있는 경우에도 미군의 요청이 있으면 한국이 특히 중요하다고 결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판권을 포기한다고 규정한다. 반면, 미군은 공무 중 사건에 대해 1차적 재판권을 포기한 선례가 없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변의 이정희 변호사는 "미군은 비공무 사건의 90% 이상에 대해 한국 측이 재판권을 포기하게 하면서, 자신들은 아무리 피해가 심각한 사건이라도 재판권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며 "이는 협정의 호혜적 적용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특히 중요하다고 결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국정부가 비공무 사건에 대한 1차적 재판권도 포기하게 하는 합의의사록 규정을 삭제하고, 양국 간의 재판권 포기에 관해 평등의 원칙에 기초한 구체적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파개정국민행동 이장희 공동대표는 "공무 중이라도 대한민국(접수국) 국민에게 사망 또는 중상해의 피해를 입힌 중대한 범죄와 공무 목적이 아닌 범죄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1차적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한나라당·민주노동당·개혁국민정당에서 나온 토론자들도 모두 같은 의견을 나타냈다.

그러나 법무부 성영훈 부장검사는 "키르키즈스탄이나 동티모르에 우리나라 국군이 파병돼 있는데, 공무 중 범죄·비공무 범죄 모두 재판권이 우리나라 군 당국에 있다"며 "미군의 공무 중 범죄에 대한 1차적 재판권이 미국에 있다고 불평등하다고 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또 "비공무 범죄에 대해선 미군이 우리에게 재판권 포기 요청을 할 수 있지만, 포기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가 판단한다"며 이 역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장희 교수는 "파견국에 전적인 재판권을 주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유물이며 지금은 치외법권적인 요소를 제한하는 쪽으로 가야한다"며 "따라서 우리 정부가 키르키즈스탄이나 동티모르와 맺은 협정도 부끄러운 것이고, 특권과 면책은 그 군대가 파병된 목적에 한정해야지 그 이상의 것에 대해 허용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또 "과거 소련이 폴란드나 헝가리가 맺은 협정은 접수국가 관할설에 가까왔다"며 "이것이 평화주의와 인권보호의 측면에서 한걸음 진전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이정희 변호사 등 사회단체와 정당 측 토론자들은 "미국 정부 대표의 입회 없이 이뤄진 미군 피의자 진술의 증거능력 부인이나 합중국 군대의 위신 손상을 이유로 한 피고인의 심판거부권 인정 등은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대한 심각한 불신이자 도전이므로 관련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초동수사에 있어 한미양국이 협조한다는 선언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나 실효성이 없었다"며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사건 발생 즉시 한국 수사당국에 통보하고 현장보존·현장검증·피의자 진술청취·수사기록 등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날 토론회에선 소파협정의 모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이장희 교수를 비롯해 민주노동당·민주당·개혁적 국민정당 등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군당국이 원하면 언제 어디든지 대한민국 내의 시설과 구역을 사용할 수 있는 무상주병권을 인정하고, 미군 주둔의 목적 규정이 없고, 철수에 관한 협의 규정이 없어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법제화하는 출발점"이라며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참석한 정당들은 국회 차원에서 소파 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실질적인 결실을 맺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국방부는 "한미 동맹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우려된다"고 했고, 외교부와 법무부는 "2001년 개정된 소파협정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불평등하지 않고, 다만 운영 상의 개선이 필요할 뿐"이란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토론회 방청객들은 "현실은 문제가 많은데, 소파협정이 전혀 불평등하지 않고 문제도 없다면 공무원들이 이제까지 반국민적인 행동을 한 것이냐",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는 생각보다는 미국과의 관계에만 신경 쓴다"는 등 분노를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