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연재] 국가인권위원회 들여다보기 : 관료저항에 막힌 파행출범

설립 1주년 앞두고 앙콜공연

국가인권위(아래 인권위) 설립 1주년에 즈음해 권력기관들의 인권위 흔들기가 절정에 올랐다. 인권위 위원장 일행의 해외출장, 청와대의 ‘엄중경고’와 이에 대한 인권위의 반박 기자회견을 둘러싸고 “인권위 ‘독립성’ 오해하고 있다”, “청와대와 인권위의 꼴불견 싸움”, “인권위는 ‘제4부’인가”라는 제목의 사설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6일, 인권위가 문을 열기 전인 오전 6시 30분 경부터 진정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땅한 구제기관이 없어 인권위의 출범을 기다렸다”고 입을 모았던 힘없고 하소연할 데 없는 국민들에게 오늘의 사태는 어떻게 비칠 것인가.


입법과정의 ‘합의’는 온데간데

“원래대로 하면 헌법에 근거규정을 둔 기관이어야 마땅하나, 국가인권위 만든다고 헌법을 개정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현실론 때문에 누구의 지휘도 받지 않는 독립기구로 했다. 법무부가 트집 잡았으나 취지대로 통과되었다. 입법과정의 합의를 지켜가야지, 시비를 걸면 되는가. 이럴 때 국회의장이 나서서 행자부에 뭐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상희(건국대 법학) 교수는 이번 사건을 “입법자의 입법의지를 부인하는 행위”라고 잘라 말한다.

입법과정을 소상히 지켜본 인권활동가 배경내(인권운동사랑방, 당시 국가인권기구 공대위 간사)씨는 “‘헌법기관이 아니면서 소속 없는 국가기관이 가능한가’라는 법무부의 ‘위헌’ 주장에 대해 국회에선 ‘위헌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며 “권력기구와 관료들의 방해에 의해 축소된 권한을 강화해도 모자랄 판국에 합의된 원칙마저 파기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인권위가 소속 없는 국가기관일 수밖에 없는 근거를 반증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대다수 인권단체들은 이번 사건을 인권위 길들이기와 자기 밑으로의 편입을 위한 정치적 음모로 파악하고 있다.

국가기관들이 저지른 인권침해를 같은 국가기관이 감시하고 견제한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 모순일 수 있다. 이런 모순, 즉 국가인권기구가 판단자이면서 동시에 인권침해의 당사자가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기존의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가져야 하며, 자율성 보장을 위해 행정부를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과의 조직적 연결고리를 자르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인권위는 국내법 체계와 위계질서 안에서만 생각될 조직이 아니라 국제인권법의 실현을 위한 기지라는 점에서도 파악돼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기존의 삼권분립이론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의 국가기구가 제안되고 만들어지는 것이 국제적 추세이며, 인권위는 방송위원회나 특별검사제 등과 같이 그 ‘새로운 개념’의 국가기구인 것이다.


왜 ‘독립성’인가

“국가인권위 설립 당시 독립성 유지 등을 고려해 민간기구화 할 것을 제의했으나 위원회쪽 관계자들이 ‘극구’ 국가기구가 되기를 원했다. 국가기구로서 예산과 지위는 갖고 통제는 안받겠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것이 청와대와 행자부의 인식수준이다.

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인권활동가 최재훈(국제민주연대, 2000년 국가인권위 설립을 위한 단식농성단 단장)씨는 “유엔이 제시한 ‘파리원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독립성 확보였다. 법무부의 ‘민간특수법인’ 대 인권단체의 ‘독립된 국가기구’ 논쟁에서 국가기구로의 귀착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그것이 돈도 받고 통제도 받겠다는 의미가 될 수는 없다. 청와대의 그런 발상은 국가인권위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파리원칙’이란 92년 유엔총회 결의로 채택된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을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국가인권기구가 국가권력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으려면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해 설치되는 것이 필수적’이며 ‘지위․권한․업무 및 재정적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가 주장했던 것은 법무부 산하의 민간기구였고, 숱한 인권침해가 법무부 산하 수사기관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제 식구 봐주기’ 관행의 되풀이를 염려한 인권단체들의 ‘독립된 국가기구’ 요구가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권위 설립과정을 밀착취재했던 김창석 기자(한겨레 21, 당시 한겨레신문)는 “설립논의에서 독립성은 핵심이었고, 헌법기관으로 인권위를 설치한 남아공을 부러워했다”며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가 만연한 우리 상황에서 법무부가 주장한 민간법인에 다른 국가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을 기대한다는 건 넌센스였다”고 회고한다.


‘독립성’ 논쟁에서 얻어야 할 교훈

인권위는 국내법상 헌법기구가 아니지만 가장 ‘헌법적’인 기관이다. 헌법의 국가관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지는 것이 당연하다. 국가의 구조라는 것도 이 목적을 위해 나오는 것이다. 어느 국가기구에도 “소속되지 않는” “독립적 국가인권위”가 어떤 점에서 권력분립의 원칙이나 국민주권이나 헌법정신을 거스르는가? 행정절차를 둘러싼 사소한 해프닝을 횡재처럼 여기고 ‘무지’와 ‘천박한 인권의식’을 드러내는 관계기관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소속 없는 국가기구”인 인권위는 대통령에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책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권위는 이 사건에 대해 호의적이지 못한 국민의 시선에 아픔을 느끼며 철저한 자기반성을 해야한다. 관계부처의 호의란 애초 기대할 바가 아니었기에 국민의 지지 속에 설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국민이 ‘우리편’이라고 여길 수 있는 인권위의 진정한 독립성과 제 도리를 생각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