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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KBS '열린채널'은 닫히고 말았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편성 불가 결정


시청자 참여프로그램인 KBS의 '열린채널'이 주민등록증 제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작품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에 대해 방영 불가 결정을 내렸음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에 대해 '열린채널' 측이 편성권한을 넘어 창작자의 고유 권한을 침해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열린채널' 시청자프로그램운영협의회(아래 운영협의회)는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세상이 제작, 서울영상집단 이마리오 씨가 연출한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에 대해 편성 불가 결정을 내렸다. 이 작품은 지난해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바 있다.

운영협의회는 "'△작품 내 비속어 사용 △행자부 공무원의 초상권 침해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장면 △제목 중 「찢어라」 부분의 순화 등에 대해 수정 및 보완을 요청했으나 연출자 측에서 이를 전면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의 편성 불가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제목 '~찢어라'를 순화해라?

앞서 제작단체인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운영협의회로부터 1월 25일과 3월 15일 두 차례 내용 수정을 요청받고, 방송용임을 감안해 작품의 기조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이미 몇 장면을 수정했다. 즉 △비속어가 나오는 장면은 처음에는 '삐' 소리로 대체했다가 나중엔 완전히 삭제했고 △공무원 이름은 익명처리하고 화면을 뿌옇게 처리해 초상권 및 인격권 침해 소지를 없앤 것이다.

그러나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제목 중 '~찢어라'의 순화 요청은 1차 수정 요청 때 없다가 갑자기 추가된 것인데다 창작자의 고유영역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김기중 변호사도 "'~찢어라'는 제목은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며, 방송심의규정 등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제목의 '순화'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조치"라는 의견을 운영협의회에 전달했다.

또 진보네트워크센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장면은 주민등록제도의 태생과 유래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이므로 "운영협의회 측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장면이 논리적 타당성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장면 삭제를 요청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주민등록법은 1961년 박정희의 5․16 쿠데타 이후 1962년도에 제정됐고 1970년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열 손가락 지문 강제날인이 실시됐다.

하지만 이러한 제작단체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운영협의회는 연출자 측이 자신들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지 않았다며 끝내 방송 편성 불가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고야 말았다.

이에 대해 진보네트워크센터는 6일 성명을 내 "'열린채널'이란 이름이 부끄러울 뿐"이라며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를 즉각 방영할 것"을 KBS '열린채널'에 요구했다. 또 이 작품의 연출자인 이마리오 씨는 "제목과 내용을 바꾸라는 요구를 듣지 않았다고 방영 불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열린채널'의 근본취지에도 어긋날 뿐아니라 '검열행위'"라고 비판했다. '열린채널'은 국민의 제작 참여를 보장하면서 기존 공중파에서 다루지 못했던 다양한 내용을 담아낸다는 취지로 방송법 제69조 6항에 따라 지난 해 초 만들어져 지난 해 5월 5일 첫 방송을 내보냈다.


'열린채널' 운영의 구조적 한계

한편, 이 과정에서 '열린채널' 운영의 구조적 한계도 함께 드러났다. '열린채널'의 운영을 담당하는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운영협의회는 KBS 시청자위원회 산하에 설치돼 있으며, KBS 편성부장, 시청자부장, 시청자위원회 부위원장, 변호사 1인, 방송위원회 시청자부장, 독립제작자 1인, 학계 1인, 시민단체 2인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작품은 운영협의회 위원 2/3의 찬성으로 방영하게 된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쪽 위원 중 한 명인 영상미디어센터의 이주영 실장은 "KBS는 단지 '열린채널'의 송출권만 있는 것인데, 운영협의회가 KBS시청자위원회 산하에 있는 데다 KBS 쪽 인사가 3명이나 참여해 KBS 쪽의 입김이 운영에 크게 작용하는 것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실장은 "8일 낮 2시 KBS앞에서 항의 집회를 연 후, KBS 시청자위원회에 '편성불가'에 대한 이의 신청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