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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고> 이스라엘·스위스·러시아·한국 등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이모저모

유엔인권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 민간단체 대표단은 2일 오전 유엔인권위원회를 참관하고 한국 외교부, 제네바 대표부 공무원들, 그리고 몇몇 다른 민간단체들과 인사를 나눈 후 낮 1시부터 병역거부에 관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간담회는 전세계적으로 병역거부운동을 주도해 온 팍스로마나, 퀘이커, 국제화해위원회, 반전 인터내셔널, 홍콩의 아시아법률자료센터 그리고 한국의 민변이 공동주최했다.

팍스 로마나 사무총장인 이성훈 씨의 사회로 시작된 간담회의 첫 번째 발표자는 국제화해위원회의 미셸 마노 씨였다. 미셸 씨는 스위스와 이스라엘의 사례를 간략히 발표하였다. 95년부터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기 시작한 스위스에서는 얼마 전 병역거부자들을 심사하는 기관에서 거부당한 마리노라는 청년이 현재 단식투쟁 중이라는 최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경우 팔레스타인과의 무력 대치 상황에서 최근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스라엘 점령지에 가길 거부하는 예비군․공무원 3백60여 명이 연서투쟁을 했고, 군입대를 앞둔 청년 150여명의 병역거부선언이 이어졌다. 최근 여성으로는 최초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례도 생겨났고,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스라엘에서도 병역거부 늘어

두 번째 발표에 나선 이석태 변호사는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실태와 이에 대한 국민여론, 국방부, 국회의원 등의 입장과 한국에서의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소개하고 한국정부와 유엔인권위원회에 촉구하는 글을 발표해서 큰 관심을 얻었다. 특히 간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1천6백40명이라는 전 세계 유례 없이 많은 수감자들의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 번째 발표자는 반전인터내셔널의 바트 호어맨 씨였다. 바트 씨는 현재 반전인터내셔널에서 병역거부와 관련해 전세계 상황을 조사․분석하고 지원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데,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 시기 병역거부운동이 시작되게 된 배경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서 병역거부와 관련한 반전인터내셔널의 활동을 소개했다. 이어 93년 헌법에 병역거부권을 명시했으나 실정법의 미비로 계속 거부자들이 처벌받아온 러시아 사례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모스크바 같은 도시에서는 길거리에서 강제징집을 하고 있으나, 최근 한 지자체에서는 헌법 규정에 따라 병역거부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시도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병역거부자 박해에 경악

마지막으로 발표에 나선 퀘이커의 레이첼 브렛 씨는 병역거부권이 유엔에서 어떻게 논의되어 왔고 최근에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대해 발표했다. 병역거부권에 관해 최고의 전문가로 알려진 레이첼 씨는 78년 최초로 유엔총회에서 병역거부권이 거론된 이후 98년의 포괄적 결의안에 이어 2000년 결의안에 이르기까지 유엔에서의 역사를 소개했다. 2000년 결의안은 각 국가별 좋은 실천사례를 인권고등판무관실에 제출해 이번 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하게 돼 있다.

그녀는 특히 올해 특히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워낙 관심이 저조한 이 문제에 대해 각국 정부와 민간단체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98년 결의안의 내용이 병역거부권의 전반적인 문제에 관한 입장을 다루고 있고 2000년 결의안에서 좋은 실천사례들을 뽑아 각 국가에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으므로 이번 인권위원회에서는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국가들을 추동하고 관심을 높여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권고등판무관실에서 수집된 각 국별 실천사례는 그 분량과 내용이 정말 실망스러웠다. 아르헨티나, 콜럼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체코공화국, 핀란드, 독일, 과테말라, 말리, 싱가폴 그리고 수단만 정부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토론에서는 병역거부권이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곳에서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이 많이 관대해졌다고는 하지만 분쟁 상황에 있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전쟁 중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에게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이첼 씨는 이를 군사주의 문제와 연관시켜 분석했다. 민간법정과 다르게 군사법정에서 2배의 형량이 선고되고 있는 한국의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라 생각됐다.


안보, 병역거부권 불인정 핑계 안돼

토론이 진행되면서 한국의 특수한 안보상황과 병역거부권을 인정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폐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는데 이에 대해 아시아법률자료센터의 베질 씨는 98년과 2000년 유엔의 결의안에 대해 싱가폴 정부가 제출한 반박글을 예로 들면서 안보의 위협이 없는 싱가폴 같은 나라에서 병역거부권에 대해 가장 극심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안보의 문제가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수 없는 근거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사고의 획일화나 군사주의의 문제가 더욱 크다는 지적을 하였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번 간담회는 2002년 결의안의 초안을 작성하기로 되어 있는 크로아티아를 비롯해, 영국, 한국 등의 정부관계자, 그리고 많은 민간단체에서 참가해서 시종일관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번 간담회는 전세계 병역거부의 쟁점이 되고 있는 사례들을 살피고 유엔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활동가들의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로서 아주 유의미한 시간들이었다.

최정민(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부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