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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이주노동자 아가스 씨의 소망

연수제 폐지, 미등록 노동자 합법화


“어떻게든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출입국 관리소 때문에 마음놓고 살수가 없어요.” 유엔이 정한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을 앞둔 16일, 아가스 씨(가명)는 작은 소망을 밝혔다. 아가스 씨는 이 땅에서 불법체류(미등록) 상태로 살아가는 26만명의 이주노동자 중 한 명이다.

94년 고향인 네팔을 떠나 연수생으로 들어온 아가스 씨는 서울 영등포의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됐다. 한국에 오기 전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지만, 그건 연수생 제도의 겉포장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약속됐던 잔업수당은 없었다. 더구나 사후관리업체는 아가스 씨의 임금 5백달러 중 매월 2백10달러를 떼 갔다.

당시 아가스 씨는 이것이 근로기준법이 금지하는 강제저축의 일종이며, 연수생 제도를 관장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이로부터 매년 수십억에 달하는 이자수익을 챙긴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다만 그는 나중에 돈을 돌려준다는 걸 믿을 수 없었고, 기술도 배울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도망가서 자유롭게 일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사업장을 이탈했다. 이는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 상태를 택하는 경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아가스 씨는 그 후로 지금까지 돌 공장, 양계장, 아파트 문 코팅하는 사업장, 신문배달 등 가리지 않고 성실히 일을 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라는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아가스 씨는 언제나 범죄자인 양 단속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법무부는 지난 6월과 7월을 집중단속 기간으로 정하고 한달 간 2천명 이상의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해 추방했고, 10월 말 다시 무기한 단속에 돌입했다. 단속에 걸려 화성보호소에서 추방 절차를 밟고 있는 이들 중엔 네팔 노동자들도 여럿 있다. 아가스 씨에겐 남의 일 같을 수가 없다. “이주노동자들을 들여온 지 10년이 넘었는데,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안전과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고 아가스 씨는 말한다.

한편에선 이주노동자들을 단속․추방하고 다른 한편에선 연수제란 이름 하에 이주노동자들을 국내로 유입하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박천응 목사는 “전체 외국인 이주노동자 중 불법체류(미등록) 이주노동자가 65%, 연수생이 35%를 차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연수제도의 기형성을 보여준다”며, “그럼에도 연수제도가 유지되는 건 연수생들로부터 소개비, 강제적립금 등을 받으며 이득을 챙겨온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 기득권 단체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주여성인권연대의 이금연 씨는 “연수제도를 없애고 불법체류 미등록노동자를 합법화시켜 그들이 정당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일한 지 7년이 넘은 아가스 씨는 현재 민주노총 산하 평등노조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인권을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나서서 싸워야 한다”고 그는 믿기 때문이다.
한편, 18일 평등노조이주노동자지부, 이주여성인권연대 등은 서울 목동, 인천, 의정부, 부산 등 출입국 관리소 앞에서 불법체류(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을 규탄하는 동시다발 집회를 가졌다. 이후 집회대오는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과 불법체류자 사면을 촉구하는 민원 서류를 청와대에 접수하기 위해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경찰에 가로막혀 민원 접수조차 무산됐다.

이윤주 이주노동자지부장은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에 이주노동자의 인권보장을 위한 민원접수조차 할수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