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장여경의 인권이야기

운동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지난 6월 29일 서울지검 서부지청으로부터 날아온 한 장의 통보서는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었다. ‘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100인위원회’가 지난해 진보네트워크 참세상에 성폭력 가해자 실명을 공개한 것에 대해 가해자 17명 중 박일문과 강철구가 피해자와 100인위, 진보네트워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었다. 그 중 박일문 건에 대해 무혐의 판정이 난 것이다.

참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성폭력 사실에 대한 뻔뻔한 부인으로부터 100인위 활동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 운동사회 분열을 낳는다는 대의명분까지…. 기득권을 위협받은 가부장성은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추악한 본성을 드러냈고 가해자들은 자신을 피해자로 위장했다. 진보진영의 반성과 대응은 미력했다. 우리의 가부장성은 아직까지 가해자의 지위를 온전히 보장해 주고 있다. 100인위 활동의 정당성을 가장 확실히 보여준 것이 보수적인 사법부의 이번 판결이라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성폭력 피해 경험은 아무리 찰나의 것이라도 오래 간다. 나도 학교에서, 직장에서, 길에서, 지하철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성폭력을 겪었지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운동사회의 ‘훌륭한’ 선배․동기․후배들의 성폭력이었다. 항변 한번 제대로 못하고 넘어갔던 일은 그대로 깊은 상처가 되었고 망설임 끝에 문제를 제기했을 때 돌려 받았던 폭언이나 비아냥은 가시가 되어 박혔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는커녕, 단 한번도 진심을 울리는 사과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 우리는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하는 것일까.

진보네트워크는 100인위 게시판이 개설된 인터넷 서비스의 운영자이자 스스로 진보진영의 일원으로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100인위 게시판이 개설된 이후부터 내리는 게 좋을 것이라는 여러 압력에 시달렸고 그때마다 우왕좌왕하며 논쟁하곤 했다. 피해자와 성폭력 지킴이를 보호한다는 원칙에 어렵게 합의했음에도 100인위 회원의 개인 전화번호를 배포하는 악의적 이용자를 밤새 쫓아다니다 지쳐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적어도 최소한의 것들에 대해서는 합의해왔던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성폭력 피해자들과 100인위 활동가들이 몸을 던져 싸운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 의식이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듯 여성문제 의식도 껍질을 깨는 고통을 요구한다. 나 자신도 순전히 다른 피해자들의 고통 위에서 배우고 있다. 그간 피해자의 실명 부분만 익명 처리한 채 놔두었던 박일문의 악의적 글을 완전히 삭제하며 또다시 반성을 한다.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이나 차별적 발언들에 적용되지 않음은 당연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어렵게 깨닫는다.

징여경 씨는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