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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현장> 모형감옥마저 빼앗긴 농성단

명동성당 들머리의 정치수배자들


"저희도 아침 일찍 기자 전화 받고 알았어요, 모형감옥 뺏긴 걸".

지난해 성탄절 직전인 12월 23일 농성천막을 통째로 뺏긴 이후 벌써 두 번째 농성물품을 압수 당한 '정치수배 해제 농성단' 진재영 대표의 말이다.

13일 오전 6시경 명동성당 측은 농성단 소유의 모형 감옥을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철거·압수해 갔다. "성당 정서에 배치된다"는 이유였다. 모형 감옥은 명동성당 들머리에 있던 것으로, 농성단은 지난 1월 18일부터 날마다 모형 감옥 안에서 수의를 입은 채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국보법 폐지·정치수배 해제' 촉구 시위를 진행해 왔다.

모형 감옥 압수 소식이 연합통신·나우누리 찬우물 등 여러 통신망을 통해 알려지면서, 오후에는 70여 명의 사회 단체 관계자, 청년, 학생들이 명동성당 들머리에 모여 규탄집회를 가졌다.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 봉변을 당한 농성단원들도 이날은 크게 분노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감옥 농성을 시작한 건데 감옥마저 뺏겨버리니 아예 말이 안 나옵니다." 농성단원 이동진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단순히 모형 감옥을 뺏긴 것이나 성당 측의 무모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농성 기간을 거치며 쌓인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했다.

진재영 씨 등이 지난해 5월 농성을 결심한 것은, 98년부터 99년까지 5백여 일간 조계사에서 진행된 국보법 관련 수배자들의 농성과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 정치수배자들에 대한 태도와 대북 정책에 변화가 이는 듯 보였던 것이다. 당시 진재영 씨 등은 정치수배 해제를 하나의 쟁점으로 만들어 국보법 폐지 운동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자신들을 비롯, 해마다 '양산'되는 학생 수배자 문제를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이기도 했다.

농성단은 모두 한총련 대의원 출신. 국보법 7조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다. 이는 학생회 선거에 당선되자마자 국보법 상의 이적단체 가입 및 구성 혐의를 적용받는 구조에서 기인한다.


해마다 양산되는 학생 수배자

명동성당에 들어와 '국보법 폐지·정치수배 해제'를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한 지도 벌써 2백여 일. 그러나 처음 걸었던 기대와 달리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2명이라는 적은 인원과 명동성당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갖는 이들에게 이런 현실은 너무나 답답하다. "함께 활동하던 동료가 실형을 살다가 사면돼 저를 찾아오기라도 하면 '나도 차라리 저랬으면 지금쯤 다른 활동을 할 수도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는 수배생활 3년 차의 이동진 씨다.

일반적으로 대학교에서 국보법 수배 학생이나 구속자가 생기면 학교별 또는 가족 단위로 사안에 따라 대처할 뿐, 사회 전체적인 문제로 쟁점화 되지는 않는다. 올해 들어 줄었다고는 하나,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한총련 대의원 관계로 수배·구속된 사건은 연평균 2백50건을 웃돈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치수배 문제를 이렇게 쟁점화시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주체는 이들뿐이다.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감옥 농성단'. 이제 '감옥'마저 빼앗긴 그들에게 정치수배 해제의 날은 요원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