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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정주연의 인권이야기

운동가의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


몇년 전 모 노조에서 그 노조 조합원으로 노조의 활동가를 채우려는 과정에서 기존의 노조 일을 위해 고용되어 활동하던 사람들을 집단으로 해고하려던 일이 있었다. 이때 해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위한 노동조합'를 만들어 이에 대응하고자 했으나 그 노조에서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결사 저지했다. 과거 필자가 일했던 모 단체에서도 활동가들의 고충을 나누는 평간사협의회를 만들려고 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운동공간에서 위아래가 어디 있느냐, 우리가 기업도 아닌데 왜 적대적인 분위기의 조직을 결성하려 하느냐는 등의 말들이 설왕설래하였다. 다행히도(?) 이곳에서는 적극적인 방해공작은 없었다. 그러나 그닥 달가와 하지 않는 정서가 확연히 드러났다. 최근에는 어떤 노동운동 관련단체에서 활동가가 그 단체가 입장을 달리하는(정확히 말하면 그 단체의 장이 입장을 달리하는) 타단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그 활동가의 활동을 그만두게 했다고 한다. 이것이 일반사회의 일이라고 하면 당연히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도 도대체 믿기지 않는 일로 여기는 것은 우리가 운동권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올초에 한 운동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동티모르 해방투쟁에 앞장섰던 한 운동가에게 어떤 사람이 "왜 당신은 해방된 동티모르에서 권력을 갖지 않는가?"라고 묻자 "권력을 향해 싸운 자가 권력을 가장 많이 닮는다. 나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 사회운동이야말로 폭압적이고 권위적인 권력과 싸워온 역사로 점철되어 있는데 이러한 투쟁이 힘과 힘의 대결로 되는 과정에서 운동사회는 힘의 논리를 깊숙이 내면화한 면이 있다. 또한 운동진영은 '운동=도덕적'이라는 신념을 지나치게 확장하고 자신들과 운동의 도덕성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신들이 범할 수도 있는 오류에는 관대하고 성찰과 반성을 등한시 해왔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운동권을 반대해온 자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운동권은 노동의 소외는 말하면서 정작 운동가의 운동에서의 소외는 말하지 않는다. '인권'이란 말은 곳곳에 등장하지만 운동가의 인권은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다. 최근에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노기연)에서 직위를 이용한 연구원에 대한 정치탄압이 자행되었지만 운동사회에서 이슈화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여성문제를 여성만이 말해왔던 것처럼 이 문제가 여성문제와 교묘히 얽혀있는 데다 운동사회에서 일어난 문제가 늘상 은폐되어온 관행에 의해 철저히 외면되고 있는 것이다. 변증법은 '멈추지 않는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주었지만 운동사회 내부의 멈춤을 바꾸는 데는 기여하지 못한 듯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운동권의 운동철학이 자신들을 향해 겨누어질 시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안을 향한 투쟁! 이것이 운동가의 인권을 보장하는 기본적 운동의 시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