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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장대비에 휩쓸려갈 정치인을 기다리며


나는 비를 유난히 좋아한다. 장대비 내리는 차없는 신작로를 원없이 걸어본 유년시절의 기억때문에 그렇다. 한여름 신작로를 그것도 작열하는 8월의 땡볕아래 재수없이 걸어가게 된 내게 장대비는 구원이요 희망이었다.

그러나 살다보니 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는다. 사람가슴을 후련하게 만드는 장대소나기도 있지만, 사람 가슴을 무너지게 만드는 큰비도 있다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비가 오고 있다. 그러나 왠일인지 올해의 비는 구원과 희망의 가슴 후련한 비는 아닌 것 같다. 축대가 무너지고, 둑이 무너지고, 산이 무너지고, 댐이 무너지고, 그리고 가족을 잃은 이들은 가슴이 무너지는 그런 비다.

하지만 그런 큰비야 해마다 있었으니까 올해 더욱더 싫은 온전한 이유는 아니다. 올해의 큰비가 싫은 이유는 그렇다. 임창렬 씨가 휩쓸려 가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좀더 정확히 얘기하면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기와 열망마저 휩쓸고 가버렸기 때문에 싫다. 부패한 정치인들을 휩쓸어 간 것이 아니라, 부패한 정치인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휩쓸고 지나가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싫어 죽겠다.

물론 현재 정치부패의 전형 중의 하나인 뇌물을 받는 문제에 대하여 형법이 아무런 처벌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수수되고 있는 뇌물이 과연 형법 제129조(수뢰)와 제132조(알선수뢰), 특가법 제3조(알선수재)에서 규정하는 뇌물인가를 입증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뇌물을 제공한 측이 '합법적인 정치자금이지 대가성은 없다''선거자금으로 제공한 것이지 공천을 부탁한 일은 없다'라고 발뺌하는 현실에서 뇌물임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오로지 검찰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부정한 자금거래의 특색은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죄추정의 원칙 하에서 정치인을 기소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정치부패의 전형중의 하나인 뇌물을 받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리적 제약도 뒤따른다.

첫째, 위법행위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모의원은 '돈은 받았는데 정치자금법 이전에 받았으니까 괜챦다’ 뭐 이런 말이 떳떳이 나온다. 즉 정치인으로서의 부당한 행위에 대하여 처벌할 수 없는 문제점을 간파한 얘기인 것이다.

둘째, 시효의 제약이 뒤따른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249조 등에 의하면 수뢰액 5천만원 이하의 경우 공소시효가 3년이며, 5천만원 이상인 경우는 7-10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5천만원 이하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거나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부패의 원천적 처벌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실제로 검찰의 수사 및 기소가 이루어지고 법원에 의한 재판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형사책임추궁으로 결론나기는 대단히 쉽지 않다. 검찰수뇌부와 정치검사가 정치인 사건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정치적으로 사건을 처리하여 왔다는 것은 심재륜 대구고검장의 성명서 등에서도 고백된 바 있다. 특히 검찰청법 제7조1항의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검찰이 정치시녀화되는 근거조항으로 오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검찰의 정치시녀화에 못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는 재판부가 독립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단계 승진구조의 포로가 되어 있는 법관으로부터 법관생활 중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하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하여 소신있는 판결을 기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답답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장대소나기를 기대하기가 난망한 일만도 아니다. 정치부패에 대하여 형사책임추구만을 갈구하지 말자는 얘기이다. 우리 헌법은 국민주권 하에서의 공권력은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행사되어야 한다고 규정하여 정치가 등의 권력담당자는 형사책임 이외에도 정치적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치책임이란 원래 주권자인 국민을 정치가 등의 공권력 남용으로부터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책임의 원인을 위법행위에 한정하지 않고, 부적당한 행위와 무능한 행위에도 확대하여야 한다.

다시말해 그 지위에 어울리지 않으면 정치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정치책임의 구체적 내용은 공권력 담당자의 지위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내용에 비추어 본다면 행사책임에서와 같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에게는 [의심스러우면 불이익을 받는]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국민소환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물론 현행 헌법에 선출직 공무원을 소환할 수 있는 명문의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현행 헌법이 국민소환제의 여지를 헌법원리적으로 봉쇄하고 있지도 않다. 더군다나 우리 헌법이 대표제를 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대표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제한 선거에 터잡은 순수대표제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의 참여를 좀더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대표제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선거제를 실시하고 있다든지 명령적 위임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지 않는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일 것이다.

우리헌법의 대표제를 이상과 같이 풀이한다면, 부패한 정치인에 대한 형사책임추궁의 답답함을 풀 수 있는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작열하는 8월의 대지에서 정치개혁의 장대소나기가 쏟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유년시절에 대한 집착일까?

이경주(경북대학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