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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대표) 최후진술 요지

방금 검사는 5년이라는 어마어마한 형량을 구형했습니다. 어제 초등학교 4학년 짜리 딸에게 오늘 아빠가 재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딸은 불안한 표정으로 아빠 또 감옥에 가느냐고 하더군요. 재판은 피고인은 물론 때로 피고인 가족에게까지 피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5년은 엄청나게 무거운 구형입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두가지만 얘기하려 합니다.

인권영화제는 이 사건이 걸린 제2회 인권영화제만 제외하고 제1회도 제3회도 대성황이었습니다.

작년 제3회 인권영화는제는 6백만원 이상의 적자를 내긴했지만 저는 많은 관객으로부터 감사와 격려의 말을 들었습니다.

상업적인 고려를 한다면 도저히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없는 훌륭한 영화들을 보여주어서 고맙다는 거였습니다. 6백만원이라는 적자가 났음에도 저는 큰 보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제2회 인권영화제만 왜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가라는 문제가 남습니다.

제2회 인권영화제가 열렸던 해인 97년 6월에는 한총련 출범식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공안검찰은 한총련 대의원 1600여명에게 한총련 탈퇴를 종용했습니다. 탈퇴를 하지 않으면 구속시킬 것이고 탈퇴를 하면 훈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이런 검찰의 처사는 분명히 국가권력의 폭력입니다. 많은 지식인들은 공안검찰의 이런 방침이 법치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비판을 했지만 저는 그 정도 바판으로는 공안검찰의 폭거에 도저히 제동을 걸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는 어느 월간지에 쓴 칼럼에서 학생들에게 한총련을 탈퇴하지 말 것을 호소했던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과거에 줄기차게 사상 전향을 강요 받으면서 긴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양심의 자유 문제로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을 목격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본심과 다른 선택을 한 후 양심의 가책 때문에 평생을 괴로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또한 많은 지식인들은 국가권력의 폭력에 굴복하고 '변절'했다는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의 논리를 만들어내면서 살아갑니다.

인간의 내심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은 사람을 피폐시키게 마련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총련 운동방식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국가권력이 젊은이들의 양심의 영역을 침범함으로써 커다란 고통을 강요하는 것을 인권운동가로서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의 부당한 폭력을 씩씩하게 견디며 젊음을 지켜내라는 취지의 칼럼, 그것이 바로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 칼럼은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고 학생들 사이에 퍼져갔습니다. 광범위한 학생운동 죽이기 정책을 폈던 공안검찰은 바로 이 칼럼에 대한 보복을 인권영화제를 빙자해서 감행했던 것입니다.

연행된 후 장안동 대공분실에서, 그리고 검찰에서도 본 사건과 아무런 관계없는 이 칼럼에 대하여 집요하게 추궁을 받으면서 저는 확실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검찰의 보복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1회 인권영화제가 무사히 이루어졌는데 2회 영화제만 왜 문제가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요컨대 이번 사건의 본질은 서준식의 '필화사건'인 것입니다.

저는 재판 행위가 사실관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개개 행위만을 들먹여 무슨 무슨 법률을 위반했다는 식으로만 끝나는 재판을 저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첫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법 적용의 평등권이라는 문제입니다. 저는 재판 과정에서 몇가지 사실에 대한 검찰과 재판부의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결심에 이르기까지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설명을 요구한 것은

첫째, <레드 헌트>는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권영화제에서 <레드 헌트>를 상영했던 서준식은 왜 구속되고 부산 영화제를 주최했던 부산 시장은 구속되지 않습니까?

둘째, <레드 헌트>가 부산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사전심의를 통과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심의통과 시킨 심사위원들은 어떠한 처벌을 받았는지요?

셋째, 보안관찰을 항상적으로 위반해온 저를 6년동안이나 놔두었다가 왜 하필이면 97년 가을에 갑자기 잡아들였는지요?

넷째, 이른바 '이적표현물'인 <참된 시작>을 우연히 집에 가지고 있었던 저는 왜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고 이 시집을 직접 쓴 시인, 발간했던 창작과 비평사 그리고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는 서점 주인은 왜 구속되지 않는 것입니까? 이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지금까지의 재판과정에서 한번도 설명된 일이 없었습니다.

재판장님께서 판결문을 쓰실 때 반드시 이런 물음에 분명하게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행위를 가지고 어떤 사람은 처벌되고 다른 사람은 처벌되지 않는 기현상을 혹 '이적(利敵)'의 의도가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설명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재판장님, '이적' 의도의 유무 즉 사람의 내심을 심판하는 일이 본래 재판이 해야할 임무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리고 판결문을 쓰시면서 저에게 '이적'의 의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시기가 곤혹스러우시면 국가보안법 7조에 대한 위헌 제청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님.

저는 직업적 인권운동가입니다. 인권운동가는 밥을 먹을때도 인권을 생각합니다.

물론 인권운동가에게는 재판을 받는 행위도 인권운동의 일부입니다. 저는 이 재판이 우리나라의 인권현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법정에 피고인으로서 서는 일을 인권운동가의 보람이요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에게 실형이 내려질 것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재판장님께서 행여 이 재판의 핵심쟁점을 피해 가시지나 않을까를 우려합니다. 부디 핵심쟁점을 피하지 마시고 정면으로 명쾌한 판결문을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판결문을 작성하실 때 언제가 우리사회가 인권이 존중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염원을 가지고 작성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