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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고문피해자 속출…구제조치 없어

고문사건 '공소시효' 폐지 등 대책 시급


14일 박종철 열사의 12주기를 맞이한 가운데, 최근 고문후유증으로 인한 이길상 씨의 자살사건(본지 12월 10일자 참조), 이을호 씨의 병원 입원 소식 등이 전해지면서 과거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고문사건의 진상규명과 고문피해자들에 대한 피해구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고문피해자의 수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5·6공 시절과 김영삼 정부 시절에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는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만도 남매간첩단 사건의 김삼석 씨, '부여간첩 김동식 사건'의 박충렬 씨, 범민련 나창순 씨 등이 물고문, 성기고문 등을 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고문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는 우선 국내 법원을 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96년 12월 안기부 수사관들에 의해 고문을 당했던 김형찬 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보듯, 국내법원에서 고문피해를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김 씨의 경우, 고문을 당한 정황증거가 뚜렷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증거가 달리 없다"며 이를 인정치 않았던 것이다.

또 고문범죄의 공소시효를 인정하는 것 역시 고문피해구제와 고문의 근절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95년 3월 헌법재판소는 황대권 씨 등 장기수 8명이 "고문에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내자 이를 각하했다. 이에 따라 군사정권 아래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들은 이제 국내 법원에서 구제를 받을 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이는 고문 등 반인도적 범죄의 공소시효를 인정치 않는 국제인권규약의 정신에도 위배되며, 영미법이나 유럽대륙법에서 고문에 대한 공소시효를 철폐하거나 제한하는 추세와도 동떨어진 것이다.

이처럼 국내 법원을 통한 고문피해 구제가 어려운 현실에서 피해자가 구제를 얻을 수 있는 길은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길 뿐이다. 이는 유엔 고문방지위원회 또는 인권이사회에 제소하는 방법인데, 우리나라 정부는 전자마저도 제도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90년 고문방지조약에 가입했지만, 고문피해자가 직접 고문방지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할 수 있는 22조 등은 비준을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길상 씨나 이을호 씨의 경우처럼, 독재정권 아래 고문을 당해 지금껏 고통받는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조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더불어 고문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국제인권조약에 부응하는 제도적 보완만이 고문없는 세상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