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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시동 걸린 '국가인권위'

정부·민간 첫 만남 … 인권위 기능엔 이견


새 정부의 100대 과제 가운데 하나인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문제와 관련, 정부와 민간단체 사이에 처음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21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동완 목사)가 주최한 '98 인권선교정책협의회에는 권성동 검사(법무부 인권과)와 곽노현 교수(방송대), 권오헌 민가협 공동의장, 이재오 의원(한나라당), 조용환 변호사 등이 참석해 '과거청산의 과제와 국민인권기구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주최측은 여당인 국민회의에 대해서도 참여를 요청했으나, 여당은 불참했다.

기조발제를 맡은 곽노현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침해 사건의 접수·처리 △인권관련 소송에 대한 참가 △인권교육 및 홍보 △인권입법·정책 등에 대한 자문과 조언 등 인권에 대한 종합적 기능을 행사하는 기구"라고 소개하며, 특히 △교도소, 복지시설 등 특별권력기관에 대한 불시방문 점검권 △증인소환권 △자료제출 요구권 △타부처의 협조요청권 등 강력한 수단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인권위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인권위원의 민간 추천 및 신분 보장, 재정 독립 등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정부측 토론자로 나와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 권성동 검사는 "법무부 인권과 소속 검사 등으로 구성된 설립준비반이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와 관련된 각종 외국문서 등을 번역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법률 마련 작업은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장관이 올해 안에 인권위 설립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8-9월경엔 법안을 마련해 공청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정부측 입장은 국가인권위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보여주면서도 당초 구상보다 그 기능과 역할을 축소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가져다 주었다.

권 검사는 "현재 실무진에서는 국가인권위가 정부로부터 독립된 지위를 보장받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으며, 예산청과 행정자치부 등 관련부서와 협의 하에 인권위의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권 검사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능을 △인권교육과 홍보 △인권 관련 법제와 관행에 대한 권고와 지원 등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인권위원회의 핵심기능인 '인권침해사안에 대한 조사 및 구제활동'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권 검사는 "인권위원회는 기존의 정부기능을 보충하는 기구일 뿐,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강제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다만 인권위원회의 명령이 실효성을 갖기 위한 방법을 연구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동완 목사는 "정부가 인권위원회에 대한 그림을 너무 작게 그리고 있는 듯하다"며, "민간단체에서 인권위 설립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조용환 변호사는 "국가인권위 설립에 있어 몇몇 국가의 사례를 모아 그럴듯한 법조문을 만든다 해도 또하나의 유명무실한 정부기구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인권위원회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그 논의를 사회적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진우 목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과거청산 기능이 확보되어야 하며, 인권위원의 인선과 구성 과정에서 인권운동단체와 인권피해자가 포함되도록 해야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가 단지 정부와 민간단체의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당초 이번 토론회에서는 국가인권위의 여러 쟁점에 대해 정부와 민간 사이에 공방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됐으나, 시간 부족과 참석자들의 이해수준 부족으로 인해 본격적인 공방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