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인권현장을 뛰는 사람들 ⑫ 손민영 씨

감옥에도 인간이 살 수 있어야 한다

지난 2월호 월간 <말>은 한 출소자의 수기를 통해 낙후된 감옥의 실태를 고발했다. 그 수기의 주인공은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지난해 10월 24일 5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만기 출소한 손민영(37) 씨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구속이라는 고통외에도 더 큰 아픔을 겪어야 했다.

같은 사건으로 구속된 그의 아버지(손병선)는 무기형을 받고 전주교도소에서 6년째 수감 중이고, 그가 구속된 지 10개월만에 어머니는 수배중에 얻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 직전 세브란스병원에서 잠시 어머니를 뵙고 장례식에도 참석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끝내 법무부 당국의 불허로 아내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할머니, 외할머니가 층격 속에 차례로 돌아가셨다.

그는 이렇게 엄청난 사건들을 겪으며 수감생활을 이겨내야 했다. 그런 고통 끝에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 교도소에 대한 이야기였고, <말>지에 실린 '교도소에서 여자는 살 수 없었네'는 자신의 수감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충격적 고발이었다.

여자의 몸으로 여자가 살기 힘든 교도소를 체험한 그는 이제 교도소 문제는 "미온적으로 대처해서는 풀릴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의 글은 일독할 가치가 있다. 그의 글 속에는 생생한 감옥의 실태와 인권을 박탈당한 이들의 절규가 절절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교도소에 격리한다는 것만으로도 수감자에게는 고통이다. 자유를 빼앗기고 가족과 격리되고, 경제생활, 정치적 권리들을 박탈당한다. 하지만 나머지 인간적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받아야 마땅한 것 아니냐."

그가 경험한 교도소의 교화작업은 오로지 고통을 가하고 그 고통 때문에 다시는 들어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일제시대의 수준이었다. 그래도 양심수는 낫다고 한다. 일반 형사범들의 경우, 그들은 거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동물처럼 취급당한다. '인간적인 자존심일랑 영치시키고, 수감기간 동안은 죽어 지내는 것'만이 가장 현명한 처세술인 것이다.


한 알의 약 얻기까지 보름간 투쟁

그가 보기에 교도관들은 일제시대의 간수와 다를바 없는 생각에 젖어 있다고 한다. 교도관들은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와 "죄수니까 고통스러운 게 당연하다"는 잘못된 인식에 젖어 있는다는 것이 5년간의 수감생활을 통해 내린 그의 결론이다.

따라서, 그는 "최소한 경험한 부분을 알릴 것이다. 사회가 관심 갖게 하려면 문제를 노출해야 한다. 그래야 해결할 길이 열린다"고 주장한다. 그는 출소하면서 수감생활 동안 틈틈이 적어둔 '병상일지'를 기초로 6개월 동안 수기 작업에 매달리겠다고 다짐을 했다. 관절염을 안고 수감되었던 그는 영등포구치소, 청주여자교도소, 김천소년교도소를 거치면서 자신의 병과 지속적으로 싸워야 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는 약을 얻거나, 제대로 된 건강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었다. 그는 행형법과 시행령의 규정대로 조치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럴 때마다 매번 거절과 청원, 행정소송 등을 하겠다고 위협(?)하고서야 보름 정도 걸려 한 알의 약과 한 번의 진료를 얻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김천교도소에서는 '독거수용자와 병자에게는 온수를 지급할 수 있다'는 규정을 교도관들이 아예 모르고 있었을 정도였다. 의료시설이라고 할 수 없는 낙후한 의무과에 70세가 넘는 의무과장과 간호사, 약을 짓는 재소자가 의료인력의 전부인 그곳에서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그가 한 일은 수지침을 배우고, 파스요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때로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임상실험의 대상으로 삼아 치료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한 때는 마비가 와서 앉아 있기도 힘들고, 숟가락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때가 있어, 통사정 끝에 외부 진료를 했지만 김천의료원 원장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된다"는 엉뚱한 진료 결과를 내놓았다. 출소 후 진찰 결과는 관절염 재발이라니 기가 찰 뿐이었다.


관절염 재발이 정신병?

감옥의 이런 반인권적인 실태를 개선하는데 자신의 몫이 있다고 믿는 그는 애초의 약속과는 다르게 외도(?)를 하고 있다.

92년대선 전, 해방 이후 최대의 간첩단 조직이라는 보도 아래 터진 이른바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작업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과 아버지가 분명 노동당에 가입도 하지 않았는데 간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안기부 개혁문제가 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상황과도 연관되어 있다.

그런 다음에 정말 자신의 약속대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감옥문제에 전념할 계획이다. 감옥도 권리의 주체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반드시 고쳐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결혼도 해야 하고, 사회에서 생활하며 살 수 있도록 취직도 해야겠지만, 지금도 5만에서 6만이라는 적지 않는 이가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진보에 힘을 보태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