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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별기고> 감옥문을 더 활짝 열어야 한다

김대중 정권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통령 취임 경축 대사면을 단행하였다. 스스로 "건국이래 최대의 사면"의 은전을 입은 사람들이 무려 552만여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깊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추스리기 어려움을 느낀다. 이번 대사면에서 석방된 양심수는 불과 74명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민가협 등 재야 인권단체에서 무조건 석방하라는 양심수 총수인 478명 중 15%에 불과한 숫자이다. 이중 533만여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사면·복권이란 것은 고작 교통벌점 삭제이고, 공무원 징계말소가 17만여명, 행정사범 등을 복권해준 것이 3만여명으로 분류되고 있다.


군사정권에도 못 미친 실패작

국민의 정부란 것이 국민대화합이란 이름으로 부정부패 공무원들이나 도둑놈들이나 파렴치범들을 사면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가? 간첩생산과 북풍조작을 전문 업으로 삼고 있는 안기부나 공안검찰에 의한 죄인아닌 죄인인 양심수들 400명 이상을 그대로 감옥에 가두어 두고서 국민의 정부니 새 역사니 국민대화합이란 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양심수 석방 수준은 국제사면위나 유엔이나 이 나라의 종교계의 양심수 석방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실패작이다. 심지어는 종전 군사독재정권이나 사이비 문민민주정권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실망섞인 국민의 탄식이 들린다.

당선 다음날로 광주학살과 국정파괴의 원흉들마저 과감히 석방할 수 있는 결단력을 보여 통큰 정치를 기대하게 했던 김 대통령이 정작 양심수 석방은 대사면의 모양 갗추는데에 이용되었을 뿐이었고 552만에 걸친 대폭적 사면 단행은 숫자 불리기 노름에 지나지 않지 않는가? 기껏해야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격이 되고 만 것이다. 색깔 의심을 받고 있는 김 대통령의 새 정권의 안정 문제와 보수우익 쪽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핀 나머지 불가피한 '작품'이었나?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대사면을 단행하면서 했다는 법무부 장관의 말이다. 그는 이번 사면조치를 발표하면서 "재범의 우려가 있는 자, 앞으로도 체제전복 활동을 할 우려가 있는 자는 제외했다"고 했다. 그에게 묻고 싶다. 지금 옥중에 있는 양심수 중에 과연 '정부전복'이나 '체제전복'을 꾀했거나 꿈꾸는 사람, 또 그럴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단 말인가? '체제전복활동 우려' 운운으로 이들을 석방하지 않은 것은 과거 암울했던 군사독재정권과 천하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정당화일 뿐이고 '민주화'와 '민족대화합'의 의지 부족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 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한총련 학생들과 범민련인사들과 장기수들을 비롯하여 노동해방운동의 지도자들인 박노해씨와 백태웅씨 등과 평화통일운동의 상징인 김낙중씨와 손병선씨 같은 민족의 지도자들이 춤을 추고 나와서 가족의 품에 안기게 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끼는 이유는 대사면이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체제전복세력인가?

이번 대사면에 포함되지 않은 양심수들은 다름 아닌 이땅의 진정한 민주인사들과 통일꾼들이다. 문제는 이 양심수들을 체제 전복세력으로 보는 낡은 의식이고 그래서 그들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야만 정권이 안정되고 국가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그 반역사적인 낡은 의식이다. 다시 한번 촉구한다. 이들이 자유를 숨쉴 수 있도록 감옥문을 활짝 열어 이번 사면조치에서 제외된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 이것만이 국민대화합과 민족대화합의 길이고 민주화와 민족통일에 대한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증명해 보이는 길이다. 그리고 새 정권이 국민의 정부가 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홍근수(목사, 향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