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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기획연재③> 양심수 사면 어디까지

규명 안된 ‘조작’ 의혹, 간첩 사건 연루자들



"내 판결은 오판이었다" 87년 당시 대법원 판사로서 '간첩' 혐의자 강희철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박우동 변호사는 훗날 이렇게 고백했다.

제주도가 고향인 강희철(41) 씨는 75년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81년 밀입국자로 검거돼 다시 한국으로 송환된다. 그로부터 5년뒤, 제주도내 신혼살림방에서 대공수사관들에게 연행된 강 씨는 장장 1백5일간의 고문수사끝에 "일본에서 조총련에 포섭되어 국가기밀을 누설한 간첩"이라는 어마어마한 낙인을 받았고, 이후 12년째 철창에 갇혀 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이 제시한 물증이라고는 평양에서 선물로 받았다는 일제 만년필과 겨울 스웨터 한 벌 뿐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수사기관의 고문을 통해 만들어진 '조작'이라는 의혹을 남긴 채 종결됐다. 박우동 변호사는 95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범죄 양상에 비해 형량이 비정상적으로 무거웠다. 설령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한평생을 감옥에서 보낼 범죄는 아니었다. 강 피고인은 사람을 살해한 무장 간첩도 아니었고 독침이라든가 권총 같은 증거물도 없었다"며 "이 사건은 조작 가능성이 짙은 사건이었다"고 털어놨다. 5·6공 때 강 씨와 같이 일본체류 생활 또는 활동이 '간첩'혐의로 연계되어 구금중인 사람은 현재 7명. 김영삼정부 출범 이후에도 박창희 교수(외국어대) 등 3명이 일본관련 간첩 혐의로 영어의 신세가 됐다.


납북어부 사건

정영(58·15년째 구금) 씨는 납북어부 출신으로서 '간첩'이 된 경우다. 강화도가 고향인 정 씨는 65년 10월 피납됐다가 20여일 뒤 귀환했다. 그로부터 18년뒤인 83년 정 씨는 안기부로 연행된 후 변호인 선임요청조차 거부당한 채 40일간의 불법구금·수사를 받았으며, 결국 법원에서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한 '간첩'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58년 납북됐다 돌아와 82년 구속된 김정묵(64·16년째 구금) 씨, 71년 납북사건 이후 83년 구속된 이상철(49·15년째 구금) 씨도 모두 장기간의 불법구금과 그 과정에서 고문을 받은 끝에 '간첩'으로 조작되었음을 항변해 왔다.


재일동포 간첩 사건

5·6공 당시의 '재일동포 간첩' 사건에서도 조작 의혹은 계속된다. 손유형(70·17년째 구금) 씨는 일본 오사카에서 플라스틱 제조공장을 하던 사업가였다. 그러나 손 씨는 81년 여행차 방한했다가 안기부 직원에게 연행돼 80일간의 불법구금을 거쳐 '일본을 거점으로 침투한 간첩'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손 씨와 그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수사관들은 안기부 지하실로 손 씨를 연행하자마자 '너는 간첩이다'며 이를 인정할 때까지 구타했고, 검찰 역시 '이렇게 말을 하면 집행유예로 석방시켜 주겠다'며 회유한 것으로 전한다. 손유형 씨를 비롯해 재일동포 간첩 사건으로 구금중인 사람은 김병주(74·15년째 구금), 김장호(58·16년째 구금), 박수관(55·15년째 구금), 서순택(70·8년째 구금) 씨 등이다.


재심 통한 의혹규명 시급

이밖에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된 가족과 접선한 간첩'으로서 복역중인 석달윤(68·18년째 구금), 박동운(54·17년째 구금) 씨 사건에서도 그렇듯이, 5·6공 이래의 이른바 '간첩' 사건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장기간(수십일에서 백여일)의 불법구금과 그 과정에서의 가혹한 고문이 벌어졌다. 재판부의 판결 역시 불법적인 수사를 통해 작성된 조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했다.

박우동 변호사는 말했다. "군사정권의 검찰과 경찰은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협박해서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시사저널 같은 호)

이제 요청되는 것은 공정한 재심을 통해 '조작'의 의혹을 벗기는 일이다. 사면조치는 그 출발점일 뿐이다.